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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769899
    작성자 : 앵두나무 (가입일자:2012-12-25 방문횟수:274)
    추천 : 61    뒷북 : 0
    조회수 : 7301
    IP : 222.119.***.26
    댓글 : 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10/23 05:39:53
    원글작성시간 : 2013/10/21 23: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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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쓸한 한국사의 뒷면.. 한국군 위안부

    대한민국 군 위안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국군 위안부에서 넘어옴)
    UN군 상대 위안부 13일부터 등록실시 동아일보 1961년 9월 14일
    위안부 교양강습 이담지서주최 동아일보 1961년 1월 31일
    흑인 하사 소행? 파주의 위안부살해사건 동아일보 1957년 5월 1일
    두 미군 위안부 신세 비관 자살 동아일보 두美軍慰安婦身勢悲觀自殺 1957년 7월 21일
    위안부 66%가 보균 전국 접객여인검진 결과 동아일보 1959년 10월 18일

    대한민국 군 위안부한국군 위안부미군 위안부 또는 한국 정신대는 한국 전쟁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주한미군 주둔시에[1]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자행된 대한민국 국군과 주한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적으로 집단적 성행위를 강요받은 위안부를 말한다. 조선인민군 여군[2], 여성 빨치산 게릴라, 그 외에 조선인민군이나 중화인민지원군 점령지 내의 주민인 여성 중 미처 피난가지 못했던 여성들 등은 빨갱이를 도왔다는 명목으로 강제로 성노예로 전락 시켰다. 이후 1960년대 초반까지 동아일보가 보도했지만 언급 금기, 기피되며 점차 잊혀지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공론화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국군 혹은 미군에게 성폭행당한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는 199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내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하여, 2002년 2월 여성운동가 김귀옥, 강정숙 등에 의해 대한민국 국군 위안부의 실제 존재가 사상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한국군이 1951년부터 1954년까지 '특수 위안대'라는 이름으로 고정식 혹은 이동식 위안부 제도를 도입해 운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이는 육군 본부가 1956년에 편찬한 공식 기록인 《후방전사(後方戰史) 인사편》과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뒷받침되었다.[3] 한국군 위안부는 일제 강점기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부 운영을 모델로 하여 운영되었다.

    일본군 위안부에 이어 한국 전쟁 전후에 있었던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한국 여성에 대한 성범죄의 존재에 대한 조사와 진술 확보 등이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진행중에 있다.

    목차

      [숨기기

    [편집]명칭

    일부에서 여자 근로 정신대(女子勤勞挺身隊)와 위안부를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여자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여자 정신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정부에 징용되고, 일반의 노동을 강요당한 여자를 일컫는 반면 위안부는 일반의 노동 대신에 성적인 행위를 강요당한 여자를 일컫는다. '정신대'의 '정신(挺身)'은 '솔선하여 앞장선다'는 뜻으로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그러나 미군 위안부는 경찰과 공무원들에게 '위안부', '정신대' 불리고 있었다.[1] 정신대 한국군 위안부는 일제 강점기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부 운영을 모델로 하여 운영되었다. 여성들은 보상을 요구해 싸우고 있다.[4]

    [편집]개요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 납치, 포주에 의해 매매 등 다양한 방법으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공식적으로 언급되면서 한국군 위안부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고, 이것은 곧 사실로 확인되었다. 한국군 위안부 문제 역시 1990년대후반부터 서서히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 한국군 위안부는 좌익 점령지에 있던 여성들 중 빨갱이를 도왔다는 이유로 10대 ~ 20대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가서 한국군의 성노예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른 것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의 관여아래에서 수십만명의 여성들이 미군 위안부가 되었다.[5] 그러나 이들의 전재는 철저히 은폐되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 2002년 3월 김귀옥(金貴玉) 박사가 일본 신문에 실렸던 한국군 위안부 존재의 증거를 공식 발표하여 화제가 되었다.[6] 또한 그 해 3월에는 한국정신대연구소 강정숙 연구위원이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7] 또한 한국 전쟁에 한국군 지휘관으로 출전했던 김희오 장군(예비역 소장) 역시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를 증언하였다. 김희오의 회고록 <인간의 향기>. 34년간의 군 생활에서 한국전쟁 당시 처음 본 공개적 군 위안소 운영 사례에 대해 '영원히 찜찜한 기억'으로 기록하고 있다.[7]

    2007년에는 세종대학교 박유하 교수에 의해 "한국전쟁 때 한국군도 위안대를 운영했다는 사실, 연구가 나왔다.[8]"는 것이 발표되기도 했다. 한국의 경남대 객원교수인 김귀옥 박사는 또 2002년 2월 23일 일본 교토(京都)의 리쓰메이칸(立明館)대학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참석, 일본군의 위안부제도를 흉내낸 위안부제도가 한국군에도 있었다고 발표하여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 역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밝혀지지 않고 은폐중인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성범죄의 존재에 대한 조사와 진술 확보 등이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진행 중에 있다.

    [편집]시작

    한국군 위안부를 최초로 설치한 인물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1948년 창군 당시의 군 수뇌부 인맥이 대부분 일본군·관동군 출신이었으며, 두 총장 모두 일본 육사 출신이다. 한국전쟁 시절에 위안부 제도를 목격한 김희오 장군(예비역 육군 소장)의 "과거 일본 군대 종군 경험이 있는 일부 연대 간부들이 부하 사기 앙양을 위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증언은 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김귀옥 박사도 "군 위안부 창설의 기획자가 분명 일본군이나 관동군 출신자이거나 그에 영향을 받은 자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힌다.[3]

    김박사는 <후방전사> 기록과 예비역 장성들의 회고록, 그리고 관계자 증언 등을 토대로 당시 국군은 직접 설치한 고정식 위안소와 이동식 위안소 그리고 사창(私娼)의 직업여성들을 이용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 위안부 제도를 운영했다고 주장한다. 우선 <후방전사(인사편)>의 '제3장 1절 3항 특수위안활동 사항' 기록을 보면 군 위안대 설치 목적은 다음과 같다.[9]

    표면화한 사리(事理)만을 가지고 간단히 국가시책에 역행하는 모순된 활동이라고 단안(斷案)하면 별문제이겠지만 실질적으로 사기앙양은 물론 전쟁사실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폐단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기간 교대 없는 전투로 인하여 후방 내왕(來往)이 없으니만치 이성에 대한 동경에서 야기되는 생리작용으로 인한 성격의 변화 등으로 우울증 및 기타 지장을 초래함을 예방하기 위하여 본(本) 특수위안대를 설치하게 되었다.[9]

    [편집]설치 장소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 위안부들의 위안소는 확인된 것만 서울 강릉 춘천 원주 속초 등 7개소가 설치 운영되었다. <후방전사> 기록에 따르면 위안대가 설치된 장소는 서울지구 3개 소대, 강릉지구 1개 소대, 기타 춘천 원주 속초 등지로 총 7개소에 이른다. 그러나 위안대 규모에 대해서는 <후방전사> 내에서도 앞뒤의 기록이 달라 정확한 그 규모를 산정하기가 어렵다. <후방전사>의 일부 기록(148쪽)에는 위안대 규모가 서울지구 제1소대 19명, 강릉 제2소대 31명, 제8소대 8명, 강릉 제1소대 21명 등 총 79명으로 돼 있다.[9] 그러나 다른 지역에도 한국군 위안부 대기소나 위안소의 설치 여부는 현재 확인, 추적 중에 있다.

    <후방전사>의 '특수위안대 실적통계표'( <후방전사> 150쪽)에는 위안부 수는 대략 서울 제1소대 19명, 서울 제2소대 27명, 서울 제3소대 13명, 강릉 제1소대 30명 등 총 89명으로 돼 있다. 따라서 전후 맥락으로 볼 때 전자의 기록은 오기(誤記)이고 후자의 '실적 통계표'가 정확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통계도 기타(춘천 원주 속초 등지) 지역 위안대는 포함하지 않고 있다.[9]

    [편집]증거

    미군에 생포된 조선인민군 간호원. 체포된 여성은 강간 등에 의해 위안부로 가게 되어 있었다.[10]

    <후방전사>에 실린 '특수위안대 실적통계표'는 1952년도에 4개 소대로 편성된 위안대 89명이 연간 20만4560명의 병력을 '위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위안부 1명이 하루 평균 6∼7명의 장병을 위안한 것이다. 또 채명신·차규헌·김희오 등 예비역 장군들도 한국전쟁 기간에 경험한 위안부 제도에 대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군부의 치부이지만 사실이다"고 증언하고 있다.[3] 이들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은 한국군 장교들과 사병의 성노리개 역할을 해야 했고, 일부는 미군의 성노예로도 활용되었다.

    이들은 주로 조선인민군 여군, 여자 빨치산 게릴라, 그 외에 조선인민군이나 중화인민지원군 점령지 내의 주민인 여성 중 미처 피난가지 못했던 여성들이 주 대상이었다.

    기존의 자료 어디에도 위안부 정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군 '특수위안대'는 사실상의 공창으로 지적된다.[3]당시 국군이 설치해 운영한 이 '특수위안대', 즉 고정식 위안소의 성격이 사실상의 공창이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군의 공식기록에는 "휴전에 따라 이러한 시설의 설치 목적이 해소됨에 이르러 공창 폐지의 조류에 순명(順命)하여 단기 4287년 3월 이를 일제히 폐쇄하였다"(<후방전사> 148∼149쪽)고 되어 있다. 군 스스로가 '특수위안대'를 공창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3]

    단기(檀紀)를 서기(西紀)로 환산하면, 위안소를 '일제히 폐쇄'한 시점은 1954년 3월이다. 그런데 1947년 11월11일 미 군정청이 공포한 공창폐지령(법률 제7호)이 발효된 시점은 1948년 2월부터이다.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위안소 설치 시점은 1951년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군은 공창폐지령에도 불구하고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약 3년간 불법으로 공창을 설치·운영한 범법행위를 자행한 것이다.[3]

    김귀옥 박사에 따르면, 다만 몇몇 문헌에서는 적지 않은 귀환 일제 군 위안부들이 한국전쟁 당시 성(性) 매매업으로 흘러들어 갔으리라는 경험적 진술에 따른 추정만 있을 뿐이다. 1996년부터 속초에서 월남민 연구를 하면서부터 처음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해온 김 박사의 추정에 따르면 위안부의 정체와 유형은 몇 가지로 나뉜다.[3]

    김 박사가 우선 주목한 것은,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위안부' 모집 형태를 쏙 빼 닮은 형태의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북파공작원과 위안부의 '불행한 만남'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북파공작원 출신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박사가 밝힌 이 첫 번째 유형은 납치와 강간에 의해 '위안부'가 된 사례이다.[3]

    • 문아무개(69) 씨는 1951년 5월경 원산 앞 바다에 있는 섬에서 다른 여맹원 3명과 함께 모여 있다가 당시 원산 앞 바다의 여도에서 첩보공작활동을 하던 북파공작원들에게 납치당했다가 그중 한 명(이아무개 부사관)에게 겁탈 당한 후에 강제로 '위안부'가 된 케이스였다. 문 씨는 결국 1953년 7월 정전이 될 때까지 여도에서 이 부사관의 아이를 낳고 같이 살았다. 함께 납치된 다른 여성들도 낮에는 군인들의 밥과 빨래를 하고 밤에는 '위안부'가 되어야 했다. 이런 일은 인근 양도에서도 있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문씨를 납치한 북파공작원 최아무개 씨는 "부대 내에 위안부를 데리고 있는 것은 잘못이지만, '우리'가 '일본군'과는 다르지 않느냐, 우리와는 정이 통하지 않느냐며 납치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설명을 흐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유형은 본대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취사생활을 해야 했던 북파공작원 부대원들이 '위안부'를 고용한 케이스. 김박사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들의 정체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북파공작원 1은 군 위안부들은 직업적으로 몸을 파는 여성들이었다고 일축했다. 북파공작원 2도 이에 동의했다. 그런데 북파공작원 1이나 2가 있던 원산 앞 섬에 위안부로 온 여성은 '그 섬에 와 군인들 밥하고 빨래해주면 한 밑천 장만할 수 있다'는 얘기에 속아왔다고 공작원 2는 엇갈리는 증언을 했다. 전쟁 미망인으로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일종의 '군 노무자'가 된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군 위안부가 된 것은 거절할 수 없는 강제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더욱이 납치된 여성들에게 선택권이나 거절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 한국전쟁 기간에 한국군과 미군이 체포한 인민군 간호원들. 당시 체포된 북한 여성의 일부는 강간당하거나 강제로 '위안부'가 되었다.
    • 한국전쟁 직전에 당시 38선 이남인 옹진반도를 방문해 여학생들의 영접을 받은 유엔 현장시찰단. 1950년 10월∼12월 북한 지역을 점령한 미군과 한국군의 일부 장교들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면서 일부 여학생들을 '특수목적'으로 대동 월남한 것으로 드러났다.
    • 1950년 당시 의과대학생이었던 이아무개(73) 씨는 납치 또는 강요에 의해 군 위안부가 될 뻔했던 또 다른 여성의 사례이다. 6·25 당시 서울에 남았다가 인민군에게 협력한 것 때문에 국군에게 체포된 이 씨는 다른 여자 의대생 3명과 함께 인계된 부대의 장교 4명에게 '배정'되었다. 이 씨는 다행히 자신을 불쌍히 여긴 한 장교의 도움으로 풀려났으나 다른 3명은 그때 이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3]

    납치 또는 강요에 의해 사실상의 군 '위안부' 노릇을 한 사례는 많지 않지만 한국전쟁에 참전한 예비역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일부 등장한다. 1951년 8월 육군 소위(종합31기)로 임관해 1984년 8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김희오 장군의 회고록 <인간의 향기>(2000년)가 그것이다.

    1951년 8월 임관하자마자 동부전선 수도사단(사단장 송요찬)에 배속되어 향로봉 전투에 참가했던 김희오 장군이 당시에 이끈 소대원들은 대부분 수도사단이 함경도에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흥남 철수작전시에 대동(帶同) 월남한 주로 함흥-원산지역 고교 출신의 현지 입대 청소년들이었다. 그런데 당시 국군은 남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부 여고생들도 '특수 목적'으로 대동 월남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여성 납치해 '위안부'로 이용하기도 김희오 장군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후 전선을 빠져 나온 수도사단은 1951년 11월~1952년 4월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동원되어 당시 남원에 위치한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서남지구 전투사령부 예하 주력부대로 8사단 등과 합동으로 작전에 참여했다. 김 장군은 소대장 시절 토벌작전 도중에 지리산의 전투지역 지휘소에서 목격한 광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대대장 천막 속에서 분명코 전투복을 착용한 소녀 한 명이 나와서 기지개를 펴고 체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임하사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보니 대대장께서 북진 당시 함흥 여고생을 애첩으로 동반, 철수하여 작전기간 중 순천에 모셨다가 최근 OP로 동반하였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대대장실에서 세숫물 대령 지시가 있었는지 당번병이 반합으로 물을 데워 가져가고 있었다.[3]

    김 장군은 당시 행군할 때 솜이불 침구와 여자 화장품 상자가 전투 소대원의 대열 속에서 배낭 위에 덤으로 얹혀 가는 슬픈 현실을 목도하고 분노했지만, 점령지에서의 강간과 납치는 사실 비일비재한 상황이었다. '군 위안부'가 될 뻔했던 앞서의 이아무개 씨와 국군 출신으로 인민군 해방전사가 된 비전향장기수 양정호 씨나 다른 국군 출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엔군과 국군은 1950년 10월∼12월 북한 지역을 점령한 동안 상당수의 민간 여성들을 겁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귀옥 박사는 이렇게 추정한다.[3]

    "특히 좌익 부역혐의가 있는 젊은 여성에 대한 강간은 실제 및 가상적에 대한 통제 및 순치 방식의 하나였다. 비공식적으로 1950년에도 군 위안부나 위안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군의 풍기 문란을 우려하여 1951년 이후 군 위안대를 공식 창설했고 일선 군부대에서도 비정기적으로 군 위안부를 동원했던 것으로 보인다.[3]"

    그리고 이처럼 민간인 강간과 납치에 의해 이미 '위안부' 생활을 경험한 여성들의 상당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사창으로 흘러들어 갔다가 다시 '군 위안부'라는 공창으로 편입되는 악순환을 거듭한 것으로 추정된다.[3]

    [편집]인원

    한국 전쟁 당시 위안부의 규모는 발굴작업 중에 있다. 김귀옥 박사는 "현재로선 한국전쟁 당시 공식·비공식적 위안부 규모를 알 길이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전쟁 직전 사창의 규모를 능가할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고 말한다.[3]

    [편집]논란

    예비역 장군들이 기억하는 또 다른 유형은 사창가에서 사들여온 가난한 여성들에 관한 것이다. 이런 여성들에 대한 '위안'의 대가는 사단 휼병부나 연대 인사처에서 지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증언에서도 드러나는 분명한 사실은 전시 하에 특별위안대를 이용하는 것 이외에도 전방의 부대들은 필요시 군 위안부를 채용할 수 있었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귀옥 박사는 군 당국이 밝힌 위안대 폐지 시점에 대해서도 다음과 문제를 제기한다.[3]

    "군부대가 공식 운영했던 공창으로서의 위안대는 1954년 3월에 소멸했는지 모르지만, 북파공작원의 증언에서는 사실상의 위안대가 존재하고 있다. 그 위안대는 사창의 형식으로 존재하지만 군부대가 공식적인 '후생비'의 명목으로 지출하고 북파공작원에 대한 포상의 형태로 존재해왔던 것 같다."[9] 공창제와 비교해서 전시 상황에서 군에 의해 관리되는 군 위안소는 위안부들의 인권을 보장받기가 더 힘들었다.[11]

    이후 한국 전쟁이 종결되면서 한국군이 정의로운 존재로 미화되어야 함에 따라 한국군 위안부의 언급 자체가 기피, 금기시되었다. 이를 논하고 한국 국군의 잔인성을 비판, 비난하는 자는 빨갱이로 몰려 매도당하기도 했다.

    [편집]일본군 위안부와의 비교

    한국군은 한국 전쟁 때 일본군 위안부를 모방하여 한국군 위안부를 만들었다. 한국 전쟁 기간 중의 한국군 위안부 제도는 구 일본군 '종군위안부' 제도를 흉내낸 흔적에도 불구하고 두 제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국군 위안부는 위안부 동원방식이나 규모 등에서도 구 일본군 종군위안부와 비교가 안되지만, 무엇보다도 후자는 강제성을 띠고 있는 국가 동원체제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다는 점이 다르다.[3]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는 국가총동원법과 맞물려 한국군 위안부에 비해 그 피해 규모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12]

    그러나 그 같은 근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군 위안대는 설치 동기나 운영 방식 면에서 일본군 종군위안부 제도를 흉내내 비슷한 모습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를테면 위안소 앞에서 줄을 지어 위안부를 기다리는 군인들과 전투력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성병 검진을 하는 군의관의 모습 등은 일본군 종군위안소의 풍경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3]

    한국군 위안부는 설치 동기나 운영 방식 면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흉내내 비슷한 모습을 띠었다.[3] 위안소 앞에서 줄을 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군인들의 모습과 전투력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성병 검진을 하는 군의관의 모습 등은 일본군 위안소의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또 일본군이 '군표'를 사용했다면 한국군은 '티켓'을 사용함으로써 그 거래 형식도 비슷한 모양새였다.[3]

    한편, '군표'는 일본의 주요 은행들이 언제든지 돈으로 교환해주는 일종의 '유가증권'이었다.[3] 일본 우익은 이를 내세워 군 위안소 제도를 일종의 공창제와 같은 것으로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창제가 국가가 성매매 산업을 통제한 경우라면 위안소의 경우는 전시라는 상황에서 국가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군이 관리·운영의 주체라는 점에서 피해 여성들에 대한 인권유린은 더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3]

    [편집]영향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논산 육군 훈련소나 전방 부대에는 군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성매매업소가 존재했다.[3] 군인들은 논산 훈련소 담장을 넘으면 이른바 '담요부대'를 만날 수 있었는데, 소위 '담요부대'는 훈련소 담장 밖에서 담요 한 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훈련병들을 상대로 성매도를 하는 사람들, 즉 훈련소 담장 밖에서 담요 한 장을 '무기' 삼아 훈련병들을 상대하는 창녀들의 속칭이었다. 이런 이동식 사창 형태의 담요 부대원 이야기는 미담이나 신화처럼 미화되기도 했다.[3]

    [편집]-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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