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고제의 종</b></div> <div>※주1</div> <div><br></div> <div>사방 천지 산으로 둘러싸여</div> <div>어딜 보아도 산만 보이는 지방 출신입니다.</div> <div><br></div> <div>어릴 때부터 종종 가던 절에 "종"이 있었습니다.</div> <div>"종"이라고 강조해서 쓴 데는 그 이유가 있는데,</div> <div>천과 끈으로 둘둘 말려 있었거든요. 종 치는 도구도 없었습니다.</div> <div>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잇큐상(※주2)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는데</div> <div>절의 한 구석에 지붕이 달린 것이 종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div> <div>그러자 그 둘둘 말린 것의 정체가 사실 종이었구나하고 느끼게 된 것 뿐이고</div> <div>아무도 그 안에 있는 걸 보진 못 했습니다.</div> <div><br></div> <div>초등학생 때 부모님께 "왜 저걸 저렇게 감아뒀어?"하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div> <div>부모님도 그에 대해 자세히 모르시는지</div> <div>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이미 저렇게 감겨져 있었던 지라</div> <div>"돌돌 말린 종"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div> <div>당연히 그 안에 있는 것도 보지 못 했다고 했고요.</div> <div><br></div> <div>시간이 흐르고 흘러, 저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습니다.</div> <div>여름 방학 때 고향에 내려와보니</div> <div>여전히 시골이었지만 우리 집 주변에도 약간 개발의 흔적이 보였습니다.</div> <div>예전에 내 방이었던 곳이 지금은 창고로 쓰이고 있었는데</div> <div>창 밖으로 풍경을 바라보니 예전과는 꽤나 달라진 풍경이었습니다.</div> <div>게다가 제 방에서 "종"이 있는 절이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div> <div>절은 산 속에 있었는데,</div> <div>원래 제 방에서는 마을 뒷산에 가려서 안 보였던 게 떠올랐습니다.</div> <div>아아, 벌레도 잡고 으름도 먹던 그 산이 사라졌구나..</div> <div>하고 쓸쓸해하면서 창 밖으로 절을 바라봤습니다.</div> <div>절은 멀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보면 엄지 손톱 정도 되는 크기로 보입니다.</div> <div><br></div> <div>저녁 식사 시간에 "뒷산이 깎이니까 절이 집에서 보이더라"고 했습니다.</div> <div>그러자 부모님 말씀이,</div> <div>제가 대학에 입학한 후 절에 사람이 없어져서</div> <div>제사나 축제 때나 다른 절에서 스님을 모셔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div> <div><br></div> <div>어느 날 밤 있었던 일입니다.</div> <div>혼자 사는 게 익숙해서인지 제 방인데도 잠자리가 불편한 것 같아서</div> <div>도무지 잠들지 못 하는 날이 있었습니다.</div> <div>그때 뭔가 낮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div> <div>종소리인가? 싶어서 창 밖을 내다봤습니다.</div> <div>거의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 뜬 밤이었지만</div> <div>당연히 저 멀리 떨어진 절의 종이 보일 리가 없지요.</div> <div>10초 정도 쳐다보고 있으려니 아주 찰나의 순간, 인공 빛이 반짝 눈에 띄었습니다.</div> <div>그게 신경 쓰여서 어릴 때부터 쓰던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습니다.</div> <div>엄마가 안 버렸으면 분명 서랍 안에 쌍안경이 있을 테니까요.</div> <div><br></div> <div>쌍안경은 예전에 둔 곳에 있었습니다.</div> <div>먼지 낀 렌즈 안을 들여다보니</div> <div>약간 흐릿하긴 해도 어둠 속에 움직이는 사람 같은 게 보였습니다.</div> <div>세 사람 정도 되는 사람이 종루에서 뭔가 하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손전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복면 같은 걸 썼는지</div> <div>이따금 주변을 비추기만 할 뿐이고,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div> <div>대충 보기엔 셋이서 종을 땅에 내린 것 같았습니다.</div> <div>아까 들린 소리는 땅에 떨어뜨렸을 때 난 소리였을까요.</div> <div>아무래도 종루에서 종을 꺼내기 힘들어 보입니다.</div> <div>이 종루에는 지붕과, 지붕을 받치는 들보가 네 개 있을 뿐, 벽은 없습니다.</div> <div>하지만 벽 대신 그 네 들보끼리 수평으로 기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div> <div>수평으로 연결된 기둥은 네 들보 모두를 잇고 있기 때문에</div> <div>그것 때문에 종루에서 종을 꺼낼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br></div> <div>당시에는 금속류 도둑질이 빈번히 일어나기 전이어서,</div> <div>대체 뭐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저는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div> <div>잠옷으로 쌍안경의 먼지 쌓인 렌즈를 닦았고, 점차 어둠에 눈이 익었습니다.</div> <div>그들은 종에 감긴 밧줄에 나무 봉을 달아서 둘이서 봉의 앞 뒤를 잡고서 들어올리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종루에서는 나왔다 싶던 때 종이 떨어졌습니다.</div> <div>두 사람이 귀를 막았습니다.</div> <div>제가 그 광경을 보고 3초 정도 지났을 때 "데엥~"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div> <div>새들이 날아오르는 소리, 개 짖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div> <div>창 밖에 보이는 몇 채의 집들에 불이 켜졌습니다.</div> <div>그걸 보고 다시 쌍안경으로 절을 보니 그들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div> <div><br></div> <div>다음 날 아침, 아니.. 뭐 저는 거의 대낮까지 자고 있었지만.</div> <div>엄마가 "어제 그 소리 들었니?"하고 물으셨습니다.</div> <div>설명하기 좀 귀찮아서 대충 대답하고 방으로 돌아가 쌍안경으로 바라봤습니다.</div> <div>종루에 사람이 몇 명 모여 있는 것 같아서</div> <div>혹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하고 절로 가보았습니다.</div> <div><br></div> <div>경내에는 렌터 카로 보이는 번호판의 밴이 놓여 있었습니다.</div> <div>그리고 종루의 한 단 높여 둔 곳 아래에 종이 떨어져 있었습니다.</div> <div>경찰 검증이 끝났고, 범인은 차를 버린 채 사라졌다는 겁니다.</div> <div>도둑 맞은 것도 아니고, 인근 경찰과 절, 자치 단체에도 연락해두겠다고 했습니다.</div> <div>한편 스님 대신 평상시에 관리하고 있는 있는 마을 소방단 사람들이</div> <div>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다시 걸까?"</div> <div>"그냥 이대로 두는 건 어때"</div> <div>뭐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던 사람들 사이에 A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div> <div>A는 초등학생 때 가족 전체가 우리 마을에서 이사해서 나갔는데 할머니만 남아계셨습니다.</div> <div>저는 이미 A와는 연락이 끊긴 상태였는데,</div> <div>할머니는 아들과 나이가 같은 저에게 상냥히 잘 해주시던 분이라</div> <div>이 나이 먹도록 가끔 댁에 놀러가곤 했습니다.</div> <div><br></div> <div>나 : 할머니, 오랜만이에요</div> <div>할 : 이게 누구냐. 오랜만이다. 그나저나 도둑일 지도 모른다는구나. 세상이 어찌 되려고</div> <div>나 : 종이 팔리기나 하나요?</div> <div>할 : 전쟁 후에는 철물점에서 찾아다니면서 자전거도 사가고 했다만</div> <div>나 : 진품명품 이런 프로그램에 나가려고 했나</div> <div>할 : 고제의 종이라니, 돈을 준다고 해도 안 갖고 싶구만</div> <div>나 : 고제의 종이요?</div> <div><br></div> <div>할머니 말씀에 따르면</div> <div>우리 고향 주변 일대는 예전에 장님 아이가 태어나면</div> <div>남녀를 가리지 않고, 눈먼 떠돌이 여자에게 데려가라고 팔았다는 겁니다.</div> <div>남자는 다시 다른 쪽에 팔리고, 여자는 눈먼 여자 떠돌이로서 평생을 사는 거지요</div> <div>이 종은 아주 먼 옛날에는 다른 종과 똑같이 사용되던 종이었는데</div> <div>어느 틈엔가 고제를 부르는 신호로 사용되게 되었다는 겁니다.</div> <div><br></div> <div>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제의 종 이야기가 나왔습니다.</div> <div>아버지는 공무원이라 어쩔 수 없이 들으신 것 같습니다.</div> <div>제가 "고제의 종"이라고 했더니 부모님 두 분이 놀란 표정을 지으셨습니다.</div> <div><br></div> <div>아빠 : 고제의 종?</div> <div>나 : 응. 고제의 종</div> <div>엄마 : 누가 그러든?</div> <div>나 : A 할머니</div> <div>아빠 : 에이~ 말도 안 돼... 그 둘둘 말린 게?</div> <div>엄마 : 어릴 때 종종 듣긴 했는데..</div> <div><br></div> <div>부모님 말에 따르면 고제의 종은 분명 고제를 부르는 게 맞다고 했다.</div> <div>하지만 눈 먼 아이가 태어날 때만 종소리가 울리는 건 아니었다.</div> <div>한촌에서는 아이를 키우기 힘든 해도 있어서, 입을 덜어야만 하던 때도 있었다.</div> <div>키울 수 없는 아이가 태어난 집에서는 부모님이 아이 눈을 짓이겨서 종을 쳤다는 것이다.</div> <div>고제의 전국 일주는 비록 힘들기는 해도,</div> <div>오락거리가 적던 시절에 가는 곳마다 환영받았던 것이다.</div> <div>그 중에서 아이 눈을 짓이길 수 없었던 어느 부모님이</div> <div>종루에 아이를 두고 고제의 종을 치고 데려가길 기다렸다.</div> <div>당연히 대부분의 아이들은 동사했다.</div> <div>스님은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이 싸늘하게 식은 걸 발견했고,</div> <div>그 옷을 종루의 들보에 감는 것으로 애도했던 것이다.</div> <div>그러던 중 고제의 종 주변에서 아이들 귀신을 봤다거나</div> <div>조난한 고제들이 걷는 게 보인다는 소문이 퍼졌고</div> <div>바람이 세게 부는 날엔 두 손으로 귀를 막아도 고제의 종소리가 들린다는 사람까지 나왔다.</div> <div>누군가의 의견으로 종루에 버려졌던 아이 옷과 노끈으로 종을 감아서</div> <div>다시는 종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div> <div><br></div> <div>부모님 두 분 다 어릴 때부터</div> <div>너 그러다 고제한테 데려가라고 할 거야!</div> <div>자꾸 그러면 고제의 종 울린다?</div> <div>뭐 그런 내용의 협박?을 들으며 내가 할머니한테 들은 내용을 듣긴 했지만</div> <div>설마 저 종이 정말 고제의 종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div> <div>이 일이 발생하고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재고해볼 일이 있습니다.</div> <div>일본에서 예전 그대로의 고제가 사라지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div> <div>노래나 풍습을 전해주는 사람은 있지만, 진짜 고제는 사라졌지요.</div> <div>일본 그 어디를 찾아봐도 고제가 걷는 행렬은 보이지 않습니다.</div> <div>하지만 그날 밤 고제의 종을 훔치려고 한 사람들이 종을 치고 말았습니다.</div> <div>과연 고제들이 온 걸까요. 어디서?</div> <div>왔다고 한다면 그들은 대체 어디로 끌려간 걸까요?</div> <div>경찰이 추적하는 게 무서워서 도망친 것 뿐일까요? 아니면...</div> <div><br></div> <div> <div>※주1 고제: 고제(瞽女)란, 장님이라는 경칭에서 유래한 말로,</div> <div>여성 장님 예능가를 가리키는 말이다.</div> <div>전국을 떠돌며 사미센(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며 구걸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div> <div>----이 고제라고 적힌 부분은 한국어로 알아볼 수 있는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떠돌이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여자 장님 악사로 번역하려다가,</span></div> <div>댓글을 보니 일본인들에게도 익숙치 않은 단어인지 아는 사람이 없어서</div> <div>우선 표제 그대로 고제라고 기재하였습니다.</div></div> <div><br></div> <div>※주2 잇큐: 일본의 유명한 스님. 동자승 때부터 지혜가 많았다는 인물로 전해집니다.</div> <div> 오성과 한음 이야기라며 어린 시절 들어온 이야기와 비슷하거나 똑같은 이야기가</div> <div> 이 잇큐상이라는 애니메이션에 수록되어 있어요.</div> <div> (저는 케케묵은 일본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잇큐 애니도 보고 관련 이야기도 읽었습니다 ^^; ㅋㅋ)</div> <div> 어느 쪽이 선(先)인지는 모르겠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