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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1274312
    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11
    조회수 : 574
    IP : 69.31.***.3
    댓글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7/05 07:21:50
    원글작성시간 : 2016/07/04 10:08:12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74312 모바일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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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등장인물_최종_다음.jpg


    중·장편 분량의 코믹/공포/스릴러 소설입니다. 챕터 #1 부터 보셔요. (순서대로 보시면 됩니다.)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1 : http://todayhumor.com/?panic_88655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2 : http://todayhumor.com/?panic_88656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1 : http://todayhumor.com/?panic_88663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2 : http://todayhumor.com/?panic_88664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1 : http://todayhumor.com/?panic_88677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2 : http://todayhumor.com/?panic_88678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3 : http://todayhumor.com/?panic_88682 

    봉신당 : 참회의 서 #4. 대 면-1 : http://todayhumor.com/?panic_88700
    봉신당 : 참회의 서 #4. 대 면-2 : http://todayhumor.com/?panic_88701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1 : http://todayhumor.com/?panic_88717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2 : http://todayhumor.com/?panic_88739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3 : http://todayhumor.com/?panic_88745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4 : http://todayhumor.com/?panic_88801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5 : http://todayhumor.com/?panic_88803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1 : http://todayhumor.com/?panic_88834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2~3 : http://todayhumor.com/?panic_88837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4 : http://todayhumor.com/?panic_88857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5 : http://todayhumor.com/?panic_88882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6 : http://todayhumor.com/?panic_88909

    ******* 

     

    내 이럴 줄 알았지! 잠깐 자리를 비웠더니... 그 새를 못 참고 계집을 끌어 들여?”

     

    난데없는 외침의 주인공은 바로 스기야마의 아내 메구미였다. 그녀는 노기 어린 표정으로 꿇어앉은 설 은을 노려보며 다가왔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무언가 큰 오해가 있는 듯 했다.

     

    ... 아니 메구미! ...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렇게 딱 현장을 걸렸는데 또 발뺌을 할 셈인가요?”

    ... 사모님... 이건 그게 아니라!”

    오호라! 지금 내 눈앞에 증거가 있는데, 단체로 발뺌을 하시겠다? 너 이년!”

     

    흥분한 메구미가 달려들었다. 이성을 잃은 그녀는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와도 같았다. 빠르게 날아들어 포악한 앞발로 애처로운 사냥감의 머리채를 잡아챈다. 말리긴 커녕 예상조차 못한 날쌘 움직임에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이런 창부(娼婦)같은 계집!”

    아아악!”

     

    머리채를 붙잡힌 설 은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 아무리 봉신당의 무녀라 한들, 분노를 머금고 달려드는 실존인간의 드잡이 질엔 속수무책인 듯 했다. 총체적인 난국, 과연 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방에 들어오기 전부터 난처한 표정이던 가토는 그렇다 쳐도, 당사자인 스기야마는 물론 곁에 선 히라타조차 이 느닷없는 난투극에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그러니 난데없이 머리채를 붙들린 설 은의 당혹감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나마 오빠인 설 휘는 어떻게든 핍박받는 동생을 구하려 전전긍긍해보지만, 상대가 여자인지라 완력을 쓰기도 여의치 않다. 게다가 메구미가 누구인가? 불륜에 관해선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의 노장이다. 따라서 스기야마 여사를 떼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어느새 관전자가 되어 버린 네명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불륜, 사실관계와는 무관하게 제3자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애초에 어려운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이 아니다. 모처럼의 볼거리가 생겼다는 기분으로 물러서 흥미롭게 주시하면 그 뿐이다.

    하지만 단 한명,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홀로 앞장서는 한 사내가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오지랖의 대마왕(大魔王)! 낄 데 안 낄 데 중, 절대 끼어선 안 될 자리를 더 좋아한다는 이 남자! 갖은 사건과 사고, 심지어 재난까지도 부른다는 마성(魔性)의 사내!

    메구미 그게 아니라!’, ‘사모님 진정하십시오.’, ‘제 동생은 죄가 없습니다.’ 동시에 터져 나온 아우성 사이로 들리는 단 하나의 단호함, 이청연, 그가 나서고 말았다.

     

    이건 뭐... 사랑과 전쟁이야 뭐야? 아줌마! 아 거기 아줌마! 아 놔! 이 아줌마가 귓구녕이 막혔나!”

     

    자칫 막말처럼 들릴지 모를 청연의 고성이 성난 매를 멈춰 세운다. 하지만 채 가시지 않은 분노는 흉폭한 시선으로 돌아보고, 그 끓어오르는 독기어린 눈빛에 스기야마는 물론 히라타마저도 외면한다. 어색한 기류와 함께 날아드는 날카로운 매의 눈빛, 그 광기가 자신을 멈춰 세운 훼방꾼을 포착한다.

    보잘 것 없는 외모, 크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헐렁한 몸매, 볼품없는 행색, 흐리멍덩한 눈빛, 메구미의 가득 찬 분노 위로 때 아닌 한 줄기의 의아함이 깃든다. ‘뭐지?’, ‘뭘 믿고 감히 날!’, 지난 세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치욕이자 어처구니없는 당돌함이다.

     

    ! 너어! 너어어어!”

    ? ! 어쩌라고! 아줌마! 할 일 없으면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요! 왜 애먼 남에 동생한테 화풀이야! 화풀이가! 어우! 저 머리칼 잡은 거 봐! 무식하게! 아우 천박해!”

     

    이제는 조금 됐다 싶었던 상황 판단 능력은 어이와 함께 상실되고, 막말과 함께 무자비한 힐난이 이어졌다. 스기야마는 물론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메구미가 누구인가? 차기 내각 대신(총리)이 유력한 당대의 실세 고노에 후미마루의 외동딸이다. 갖은 기행과 추문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안하무인의 행태를 보이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남편인 스기야마조차 감히 그 뒷배경이 무서워 심기를 거스르지 못하는 천하의 여걸 스기야마 메구미, 그런 그녀에게 무식하다’, ‘천박하다.’ 같은 막말을 퍼부었으니, 그들이 이토록 경악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하지만 중용(中涌)의 도와 절제, 아쉽게도 청연은 그런 미덕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먼 인간이었다. 요컨대 침묵은 금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를 삶의 금언(金言)으로 여기는 얄팍한 인간군상인 것이다. 따라서 이후에 보인 일련의 행태 역시 그런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뭘 봐! 보면 어쩔 거야! 이 아줌마가 아예 적반하장이네! 사람이 쪽팔린 줄을 알아야지!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데... 어휴... 쪽팔려! 아우 꿈에 볼까 무섭네!”

     

    청연의 거듭된 악담세례에 지켜보던 히라타가 중얼거렸다. ‘미.친.놈 넌 죽었다.’, 스기야마도 말했다. ‘쟤 뭐야... 무서워...’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한 곳으로 향했다. 스기야마 메구미, 38, ‘동경 사교계의 독거미’ ‘독사 같은 여자’ ‘철혈(鐵血)의 귀부인’, 그녀를 수식하는 말들 중 섬뜩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떨고 있었다.

    누가 봐도 두려움, 공포,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분노, 모멸감, 그리고 복수심, 그 세 단어가 모두의 뇌리에 박혔다. 긴장한 자들 중 가장 아찔함을 느끼는 자는 단연 스기야마였다. 당사자인 청연은 특유의 뇌 내 청순함으로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메구미의 무서움을 가장 뼈저리게 알고 있는 스기야마는 불안한 표정으로 몸서리쳤다. 섬뜩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때는 십 팔년 전, 신분상승과 가문간의 전략적 제휴를 위한 결혼이었다. 야심가인 스스로가 선택한 정략결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첫 사랑은 있었다. 사치코, 뇌쇄적인 메구미완 달리 순수하고 코스모스처럼 유약한 여자였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배경에 폐병까지 걸린 그녀를 집안의 어른들이 허락할 리 없었다. 예정된 파국이었다. 헤어짐의 말도 그녀가 먼저 했다. 그렇게 스기야마는 그녀를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헤어진 지 8년 만에 두 사람은 재회한다. 이미 가정이 있었지만 다시 찾은 사랑 앞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드러낼 수 없는 애틋함에 사랑은 더 뜨겁게 타오르고, 감정은 무르익어만 갔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 했다. 모든 사실을 알아낸 메구미가 불 같이 화를 내며 날 뛴 것이다. 곧 군부의 요직에 있던 스기야마가의 인사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밀려났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군부의 유력가문이었던 스기야마가는 순식간에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버리고, 싸늘한 눈초리 앞에 스기야마는 메구미를 찾았다.

    사죄’, 삼일 밤낮을 꿇어앉은 스기야마에게 메구미는 그녀를 버리라 말했다. 예상했던 일이었고, 각오했던 대가였다. ‘이별’, ‘헤어짐눈물보단 분노가 치밀었다. 충격으로 지병이 악화된 그녀가 얼마 못가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병원에 압력을 넣어 그녀의 치료가 거부됐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결국 한 떨기 코스모스가 되어버린 그녀, 하얀 가루로 분한 그녀를 도쿄 만에 뿌리던 날, 스기야마는 결심했다.

     

    강해지자...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을 만큼 강해지자...”

     

    이후, 두 사람의 사이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부부간의 관계가 사라진 것은 물론 대화조차 줄어들었다. 타고난 요부였던 메구미는 얼마 못 가 밖으로 나돌았고, 그건 스기야마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들로 사내로서의 욕망을 해소했다. 그의 괴벽과도 같은 폭력적 성() 취향이 발현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아내를 닮은 유약한 어린 소녀에 대한 폭행, 그리고 행위, 아내에게 받은 상처를 극복코자하면서도 내심 두려워하는 삐뚤어진 자의식의 투영이었다.

    허나 그 또한 오래가진 못했다. 그가 손댄 유곽의 어린 창녀들은 어느 순간 아무 이유 없이 실종되거나 누군가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병신이 되어 나타났다. 그때마다 그는 몸서리쳤다. ‘무서운 여자’ ‘뱀처럼 차가운 요부몸 속 세포 깊숙한 곳까지 아로새겨진 공포, 그에게 메구미는 그런 존재였다.

    문득 그 시절의 오랜 악몽이 떠올랐는지 스기야마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청연을 바라봤다. 비록 오늘 처음 만난 사이지만 묘한 동질감마저 느낀다. 하지만 이내 질끈 눈을 감았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청연에게 투영한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불의의 사고를 떠올렸는지 급히 고개를 젓는다. 형상화 할 순 없지만 모두가 핏빛 색채로 가득 칠해져 있다. ‘설마...’ 하지만 이내 중얼댄다. ‘아니야 충분히 그럴 여자야!’

     

    ... 감히... ... 나한테... 네 까짓 게!”

    에라이 뿡이다 뿡! ! ! 어쩔 건데! 어쩔 건데?”

     

    분노로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대며 메구미가 일어섰다. 두 눈엔 어느새 핏발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청연의 조롱, 폭발할 듯 피어나는 살기에 히라타마저 고개를 돌렸다. 설 휘 역시 애먼 천장만을 바라본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떨어지는 한 줄기 눈물...

     

    ... ... ... 네 까짓 게... ...”

     

    격정적인 분노와 극단에 치달은 살의가 그녀로 하여금 어떤 주체 못할 감정을 느끼게 했을까? 갑자기 메구미의 두 눈 가득 눈물이 맺혔다. 조금은 의외의 일이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사이 한 사내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다가섰다. 청연이었다.

     

    에이... 아줌마 한 소리했다고 또 울건 뭐예요? 다 큰 어른이, 사람 마음 약해지게... 에이 내가 미안한걸로 합시다! 아니다. 미안합니다! 됐죠? 거 참! 사람 민망하게... 자 여기 손수건, 코는 풀지 말고 자! 받아요! 얼른! 팔 떨어지겠네!”

     

    청연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손수건을 건넸다. ‘울컥이해할 순 없지만, 손수건이란 그 작은 천 쪼가리가 그녀의 감정 어느 한 부분을 건드렸을까? 메구미가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 눈치 없는 청연은 돌연 자신이 가해자란 사실도 잊고 어깨를 두드린다.

     

    아줌마 괜찮아! 괜찮아... 살다 보면 다 이런 날 있고 저런 날 있는 거지... 울긴 왜 울어! ! 에이! 코는 풀지 말라니까! 드럽게...”

    흐흐흑... 흐흐흐흑!”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메구미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상황은 당혹의 연속으로 치닫고, 지켜보던 히라타가 놀라 사모님! 사모님!” 하며 외친다. 하지만 일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흐느끼며 복도 저 만치로 사라져 갔다.

     

    비켜! 이 자식아! 메구미상! 메구미상!”

     

    조금 의외였던 것은 내내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던 가토가 느닷없이 히라타를 밀치며 메구미를 따라나섰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하나 납득할만한 것이 없는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가토 덕분에 이유도 모른 채 엉덩방아를 찧은 히라타는 망연자실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머리를 뜯긴 설 은과 설 휘 남매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단 한명, 비릿한 조소를 머금다 못해 큰 웃음 터트린 자가 있었으니, 바로 내내 메구미에게 억눌려 살아온 최대의 피해자, 스기야마였다.

     

    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핫! 으하하하하하핫!”

     

    이제는 지켜보던 병사들조차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다.

    아내는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며 돌연 애먼 소녀의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헌데 말려도 들을 것 같지 않던 독사 같은 여자가, 신통력은 제법이다만 웬 생기다 만 머저리 같은 인간의 소리를 듣더니 돌연 애처로운 소녀가 되어 뛰쳐나갔다. 헌데 남편이란 작자는 제쳐두고 제3자인 가토가 다급한 얼굴로 뒤를 쫓는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그 뒤의 상황이었다. 모든 게 이렇듯 엉망진창인데 정작 남편인 부대장 스기야마는 뭐가 그리 즐거운 지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숫제 웃다가 숨이 넘어갈 판이다.

    일련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아아흠... 피곤하다. 차를 오래타서 그런가? 어깨도 결리고... 저희 잘 데는 있나요? 방이요 방! 밥도 좀 주시면 좋고...”

     

    긴 여행으로 인한 여독은 이해하지만, 지금 상황에 태연히 건넬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한 얼굴의 청연은 길게 하품을 하며 묻는다. 이 인간 위기감은커녕 상황파악조차 안 되는 걸까? 부대장의 아내에게 막말을 했다. 게다가 울려 내쫓기 까지 한 것이다. 그런 주제에 방까지 내놓으라니,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이 말을 듣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모든 상황의 결정권자이자 피해자의 유일한 이해관계인(?)인 부대장 스기야마가 웃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제야 겨우 박장대소를 멈추며 반가운 낯으로 말했다.

     

    으하하하! 그래! 피곤도 하겠지! 먼 길을 왔으니! 배도 고프겠고! 으하하하핫! 미안하네! 내가 크흐흐흣 지... 진짜... 으흐흐 하도 오랜만에... 으하하하하하... 통쾌하게 웃었더니... 배가 다 아파서... 아이고! 배야!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청연입니다. 얘는 설 산이 투, 아니... 설 휘, 쟤는 설 은이... 그나저나 일단 밥부터...”

    ? 그래 줘야지! 하하하하! 이봐 히라타!”

    하잇!”

    연락해서 진수성찬을 대접하라고 해! 내 명령이라고! 알았나! 으하하핫!”

    하이!”

     

    연신 터져 나오는 스기야마의 웃음소리에서 깊은 만족감이 묻어났다.

     

    자네! 아주 마음에 들어! 아주! 내 과거 병력과 이름, 그리고 나이와 생일까지 모두 맞춘 그 재주도 신묘하지만, 성격도 시원시원한 게 내 마음에 드는구만!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거나 힘든 점이 있으면 주저 말고 내게 의논하게! 알았나?”

    하하하! 선생님이 저랑 코드가 잘 맞으시나 보네요. 하하하 아이 배고파...”

    히라타 뭐하나! 어서 연락해! 손님을 맞아야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앞으로 이 젊은 친구와 그 일행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도록, 귀한 손님처럼 말이야! 알았나!”

    ? ... 귀한 손님이요?”

    물론이지! 그리고 특히, 이 친구! 이름이... 그래! 이 이청연군에겐 마치 나를 대하듯 깍듯이 대할 수 있도록 알겠나?”

    ? ... 대좌님을 대하 듯이요? ... ... ... 명심하겠습니다.”

     

    거듭된 당부에 히라타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파격적인 대우였다. 군대는 철저한 계급사회이자, 명령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조직이다. 일개 조선인 무녀 일행이라 하나 부대장의 비호를 등에 업은 순간, 그 지위는 이룰 말 할 수 없이 치솟게 마련이다. 평소엔 무디다가도 이런건 귀신같이 찾아 먹는 청연이 제 낮은 콧대를 바짝 세우며 어깨를 으스댔다. 근엄하던 히라타의 표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식당으로 안내하는 손길부터가 공손하다. 약간의 불만은 느껴지지만 그 정도는 무시할만 했다.

     

    ... 식당은 본관 뒤편에 있다... 습니다?”

    아이고 배고파, 아저씨 고기 나오죠 고기?”

    ... 아저씨? ... ... 고기... 따로 얘기해 두겠습니다.”

    오오! 고기, 고기! 고기!”

     

    늠름한 표정으로 돌아서며 고기를 연호하는 청연, 이 순간 그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자였다. 돌아선 청연을 향해 스기야마가 다시 한 번 외쳤다.

     

    이봐 자네!”

    ?”

    정말 마음에 들어!”

     

    생뚱맞은 스기야마의 말에 청연이 배시시 웃었다. 그는 조금 전의 일로 청연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듯 했다. 물론 우리의 오지랖 대마왕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좋다니까 웃는 것이다. 그리곤 이때다 싶어 빼 먹지 않고 제 자랑도 늘어놓는다.

     

    하하하핫! 보통 제 매력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하죠! 하하핫! 근데 저기 히라타씨! 식당에 커피도 나오나요?”

    ... 히라타씨? .... ... ... 물어보겠습니다.”

     

    히라타는 애매한 호칭에 조금 발끈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며 순응했다. 스기야마, 역대 753부대의 부대장들 중 가장 괴팍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 바라보는 자가 아닌가. 조선인이라 하여 감정적으로 대했다간 불호령은 물론 난처한 입장이 될 것이 뻔했다. 군대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부대장의 아내가 사모님이 되듯, 부대장의 손님은 부대의 손님이다. 나름의 예우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 일단 가시죠. 이청연... 서...선생님

    하하하! 그럽시다. 저는 그럼 이만!”

     

    즐거운 표정으로 히라타를 따라 복도로 나선 청연과 그 일행, 스기야마가 손짓하자 동석했던 4명의 병사도 제 임무를 마치고 밖으로 나선다. 비로소 고요를 되찾은 스기야마의 집무실, 꼭 닫힌 문틈 사이로 참고 참았던 그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으하하하하핫! 크하하하핫!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누나! 크하하하핫! 으하하하하핫!”

     

    텅 빈 복도에는 꽤 오랫동안 스기야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나직한 불안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나저나... 저 듬직한 친구, 가토가 서쪽 초소 건으로 불러왔다 했는데... 보름달이 뜨기도 전에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쩐다? 에이 설마... 여기가 본토도 아닌데, 아니야! 메구미! 절대 가만히 있을 여자가 아니지! 각별히 조심하란 말을 했어야 했는데... 아니지! 아니지! 내 과거의 병력(病歷)은 물론 나이와 생일까지 대번에 알아 맞춘 영험한 친구가 아닌가! 그런 자가 쉽게 당할리야 없겠지! 하하하하핫! 으하하하하하핫!”

     

    그 날 밤, 늦은 시간까지 멈추지 않고 울려 퍼진 스기야마의 웃음소리는 금세 화제가 되어 병사들의 입을 타고 전해졌다.

     

    들었어? 어젯밤 부대 본청 뒤에서 들렸다는 그 웃음소리?”

    들었다마다. 밤늦게까지 계속 울려 퍼졌다더군! 그거 악령의 웃음이라며?”

    그러게 말야! 나도 얼핏 들었는데, 미친 듯이 웃어대더라고, 어찌나 섬뜩하던지 오줌을 지릴 뻔 했지 뭔가!”

    초소도 모자라서 본청 뒤까지? 이거 뭐 무서워서 살겠나... 후방이라 꿀 빨다 가는 줄 알았는데...”

     

    스기야마의 기쁜 웃음, 그것은 또 다른 괴담의 시작이었다.


    마지막것.jpg

    봉신당 : 참회의 서

       Written by 야설왕짐보(미스공 괴담공작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멘트

    즐거운 주말 되셨나요? 다음편까지가 과거 인물들의 사연을 다룬 챕터 6 적응이고, 

    이후엔 챕터 7로 넘어가며 극이 조금 더 진행됩니다. 계속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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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신당 #1. 업은 업으로 덕은 덕으로 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5578
    봉신당 #2. 인면목의 저주 <=요건 한 번 보시면 재밌어요. 나름... 하나도 안 무섭고 유쾌하지만...


    출처 나,
    미스공 괴담공작소
    http://blog.daum.net/ozthe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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