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에 걸린 것 같아 병원에 갔는데 뽀로로의 포비를 닮은 의사 선생님께서 좀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내게 대장 내시경을 권유하셨다.<div>대장 내시경의 공포를 인터넷에서 읽은 나는 선생님의 권유를 사양했지만, 태어나서 아직 한 번도 대장 내시경을 하지 않은 청정한 상태라는 점과</div><div>실비 보험처리가 가능하다는 말에 옆에 있던 와이프는 적극적으로 대장 내시경을 권유했다.</div><div><br></div><div>"오빠 똥 싸는 거 좋아하잖아. 내시경 검사하면 오빠 좋아하는 똥 원 없이 쌀 수 있어!"</div><div><br></div><div>난 똥 싸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고,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인 화장실에 있는 것을 좋아할 뿐인데..</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결국, 1주일 후 대장 내시경을 하기로 하고 받아온 것은 가루약 한 박스와 물통 하나 그리고 금식 관련 안내문이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안내문을 읽으며 뭐 이렇게 먹지 말라는 것이 많아 불만이었지만, 시키면 시키는 데로 잘 따라 하는 성격이라 며칠간 금지된 식품을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참으며 견뎠다. 먹지 말라는 김이 왜 그리 먹고 싶은건지..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계속 머릿속에 양반김, 상놈김, 대왕김 등 김 생각만 났다. 그리고 먹지 못한다는 현실에 김이 샜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리고 운명의 대장내시경 전날이 왔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오후부터 금식을 해서 그런지 배가 너무 고팠다. 약이든 똥이든 뭐든지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드디어 약을 먹을 시간이 되었을 때 </span></div><div>물과 가루를 사용법대로 섞은 약을 주저하지 않고 마셨다. </div><div>맛은 그다지 없었지만, 배가 고파서 쉬지 않고 마셨다. 30분 단위로 마신 지 2리터를 마셨는데 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div><div><br></div><div>"남들은 먹자마자 쫙쫙 쏟는다는데 설마 내 오장육부는 너무 건강해서 다 소화해버린게 아닌가."하고 걱정이 됐다. </div><div><br></div><div>그리고 세 번째 약을 마실 때 나는 여유를 보이며 와이프에게 </div><div><br></div><div>"내가 쉬지 않고 마실 테니까 몇 초에 마시는 지 한 번 시간 재봐.."</div><div><br></div><div>벌컥벌컥, 정확히 1리터의 약을 46초 만에 마셨다. 흠.. 좀만 더 젊었으면 30초도 끊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div><div>그리고 다시 여유 있게 내일 검사하고 먹을 막창과 소주를 생각하며 밀린 막장 아침 드라마 '울지 않는 새'를 보고 있었다. </div><div>드디어 신호가 오는지 배에서 명량해전의 조짐이 조금씩 보였다. 그리고 오현경 아줌마의 분노하는 외침과 동시에 </div><div>나의 괄약근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풀리 듯 굳게 닫혔던 문을 개방하기 시작했다.</div><div><br></div><div>화장실에서 내가 떠오른 사람은 영화배우 박해일이었다. 그의 이름인 해일처럼 내 괄약근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똥들이 변기를 향해</div><div>넘쳐 들어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연기파 배우 박해일 님)</div><div>그리고 거친 폭풍이 몰아친 뒤 잠시 평온이 왔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div><div>이번에 생각난 건 일본 가수 서던 올스타즈의 쓰나미였다. 원곡은 잔잔한 발라드곡이지만, 조용한 화장실 안 변기에는 거대한 쓰나미가</div><div>내 엉덩이와 변기 사이에서 거침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악.. 똥물 튀면... 어떻게 해..</div><div><br></div><div>그리고 또다시 약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div><div><br></div><div>"부인, 나 이제 이거 더는 못 먹겠어. 힘들어."</div><div><br></div><div>"응. 내가 그럴 줄 알고 이걸 준비했어."</div><div><br></div><div>와이프는 효과 빠른 포카리 스웨트에 약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로 다가와 내 입에 병 입구를 쑤셔 넣었다. </div><div>"먹어. 먹어.. 이거 약이야. 안 죽으니까 먹어"</div><div><br></div><div>"그렇게 좋으면 너나 먹고 살빼..어어어어ㅓㅇ거어거억"</div><div><br></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한 손에 내 얼굴을 쥐어 잡고, 다른 한 손에 병을 내 입을 향해 약을 집어넣으며 사악하게 웃고 있다. 무섭다.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미저리의 그녀 같다.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 후 몇 번의 변기에서 생사를 넘어선 사투를 벌인 뒤 가뜩이나 연약한 신생아 체력인 나의 체력은 고갈되기 시작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약은 둘째치고 힘들어서 이제 똥도 못 싸겠어..똥꼬도 쓰라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이제 두 번만 더 마시면 되잖아. 한 병 마실 때 마다 만 원씩 용돈 줄 테니까 마셔..그리고 이제 물티슈로 닦아."</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절대 나는 2만 원 때문에 마신 건 아니었다. 대장 검사를 위해 마셨을 뿐이었다. </span></div><div>화장실을 몇 번을 왕복했는지 방문횟수 체크하는 것도 포기할 때 즈음 나의 괄약근은 물총새가 되어 물총을 쏘고 있었다.</div><div>결국 밤새 화장실을 왕복한 나는 화장실 앞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div><div><br></div><div>그리고 다음 날 마치 섬에서 배구공과 사랑에 빠졌던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 아저씨처럼 초췌한 몰골로 와이프의 부축을 받으며 </div><div>병원에 방문했다. 아랫도리를 과감하게 오픈할 수 있는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이상야릇한 옷을 입고 내시경을 위해 누웠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웃으면서 내게 말씀하셨다.</span></div><div><br></div><div>"환자분 팬티도 벗고 오세요."</div><div><br></div><div>"저 그럼 이것만 입고 있는 거예요?"</div><div><br></div><div>"네 아무것도 입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아요."</div><div><br></div><div>"팬티는 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데..."</div><div><br></div><div>"벗고 오세요." </div><div><br></div><div>"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을 잘 듣는다. </div><div><br></div><div>"이제 자연스럽게 잠이 드실 겁니다."라는 그녀의 말에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나는 잠이 들었다. </div><div>잠에서 깨어나 아무 일도 없는 듯 옷을 입고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나를 데려온 와이프와 검사결과를 듣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다행이다. </span></div><div><br></div><div>그리고 와이프는 전날 과도한 똥질과 덜 풀린 마취로 비틀거리는 나를 데리고 가며 말했다. </div><div><br></div><div>"오빠한테는 말 안 했는데, 아까 간호사 선생님이 그러는 데 너 잠꼬대 했데.."</div><div><br></div><div>"뭐라고?"</div><div><br></div><div>"엄마.. 엄마.. 이거 내꺼야 내꺼야.. 계속 그랬데.." </div><div><br></div><div>지금도 나는 검사할 때 무슨 꿈을 꿨나 그게 궁금하다. 알 수가 없다.</div><div>엄마가 내 밥을 뺏어 먹었나..</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