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지도를 만드는 과정이 힘들기는 했겠죠. 하지만 답사는 그렇게 꼭 많이 해야 정확한 지도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저 추측이죠. <div>또 대원군이 문초를 했다느니 하는 것도 다 소설이구요.<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의 생활형편입니다.</span></div> <div><br></div> <div> 당시 상황을 보면 지도나 지리서가 한 두개가 아닙니다. 유명한 이중환의 택리지도 있고 정상기의 동국지도도 있습니다.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외국에서도 세계지도가 들어와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곤여전도, 천형도,곤여만국전도등이 있었고 영조때 지리서로 여지도서를 편찬했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게다가 당시에는 읍지의 편찬 역시 활발했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또 역사 고증서적으로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에 한진서의 지리고가 있죠.</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김정호도 만든 지도가 하나가 아닙니다. 청구도도 있고 동여도도 있으며 지리서로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를 만들었습니다.</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그럼 이 많은 지도, 지리서를 왜 만들었을까요?</span></div> <div><br></div> <div> 수요가 있으니까 만든 겁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상업이 상당히 발달했고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을 있는 중계무역까지 있었습니다. 즉, 당시의 발전상을 볼 때 정확한 지도 혹은 지리정보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있었고 그래서 지도, 지리서를 많이 만들었을 겁니다.</div> <div><br></div> <div> 대동여지도의 보급은 상당히 이루어졌다고들 합니다. 이 역시 전해지는 이야기라 믿을 수는 없지만 누구나 김정호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지도도 있으니 보급은 제법 되었을 겁니다. 그러면 그 보급은 어디서 한 건가요? 김정호가 인쇄를 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인쇄 비용 자체가 만만치가 않았을 거고 그렇게 인쇄한 지도를 다 자선사업하듯이 주고 다니지는 않았을 겁니다. 만약 끼니를 거를 정도였다면 지도 줄테니 쌀 좀 줘라. 뭐 이럴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게다가 서적의 매매(시장에서 서적을 사는 걸 말합니다.)는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며 조선후기가 되면 서적의 매매도 활발해 지게 됩니다. </div> <div><br></div> <div> 김정호가 무료로 지도를 나누어 줬다는 이야기가 없는 이상 그 지도를 준 대가로 무언가를 받았을 거라고 보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요? 지도를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했을 테니 가난했을 거라고 하는데 그럼 그 가난한 살림에서 아마도 돈을 빌려 찍었을 지도를 굳이 다 무료로 주고 다닐 이유는 뭔가요? 책을 파는 사람들이 그 유명한 김정호의 지도나 지리서를 안 원하겠어요?</div> <div><br></div> <div> 사실 김정호의 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어서 추측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그 추측이 항상 빈곤쪽으로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도 제작하는 동안에는 별 다른 소득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그가 계속 지도를 제작한 것을 보면 처음 만든 지도가 수입원이 되어서 더욱 좋은 지도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는 겁니다.</div> <div><br></div> <div> 조선 시대에는 노비가 노비를 소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정호는 노비도 아닙니다. 따라서 꼭 유력 양반이 아니라고 해서 비참한 생활을 했으리라 추측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div> <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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