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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1804004
    작성자 : Neuromancer
    추천 : 1
    조회수 : 10314
    IP : 112.172.***.88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25/09/30 16:11:39
    https://todayhumor.com/?gomin_1804004 모바일
    오만함에 관한 생각
    옵션
    • 창작글

    오래전 일이다. 나에게는 아주 깊은 상처로 남았던 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취미로 목소리 연기, 대본 읽기 등에 종종 심취하곤 한다. 이 일에 빠져들기 시작한지 어연 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나의 연기는 부족한 부분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남이 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어색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로는 올라선 것 같다. 종종, 나의 목소리 연기를 접하고 누군가가 나를 향해 감탄하거나 경외심을 내비칠 때, 내가 이제까지 노력한 것이 조금씩 빛을 발하는 듯 보여 깊은 안도감과 형언할 수 없는 황홀감으로 빠져든다.

     

    쓸데 없는 말이 길었다. 다시, 처음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당시, 나는 나와 비슷한 취미, 취향을 공유하는 온라인 그룹에 속해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대부분 나처럼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였지만, 개중에는 진정으로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할 정도의 탁월한 실력자들이 일부 섞여 있기도 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굉장한 부러움과 찬사를 받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래서인지 자기 자신의 그런 모습에 취해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나는 아직도 자신감과 오만함의 경계가 정확히 어디쯤인지 명확하게 구분짓지 못한다. 아마도, 내 그룹에 속했던 사람 대부분은 나와 같은 입장을 공유했을 지 모른다. 그만큼, 자신감과 오만함의 차이를 매 순간 인지하고 그것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들, 잘난 사람들, 어쩌면 자기애적 성향을 과도하게 지닌 몇몇 사람들 앞에서 한 없이 무력했던 것일 수 있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또 존경했다. 단언컨대, 그들의 끊임 없는 자기 과시와 선민 의식 속에서도 나는 끝내 열등감이나 수치심에 빠져들지 않았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그저 매 순간 그들이 가진 능력을 진실로 높게 평가했고, 심지어 그들이 나를 은연 중에 무시할 때에도 나는 묵묵히 제 할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목소리를 이용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아를 연기한다는 것은 생각 외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호기심을 갖고 시작했지만, 일 주일도 안 되어 그만두는 사람들이 태반이었고, 그런 안일한 각오로 별 생각 없이 뛰어드는 이들이 발에 치일 만큼 흔했었기에 어쩌면, 이 바닥의 실력자들은 그러한 태도에 질려버려 은연 중 초심자들을 얕잡아볼 만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에서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금새 포기해버릴, 그런 어중이 떠중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을 법 하다.

     

    어찌 됐든, 모임에 가입하고서 몇 달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정말 사소한 일로 불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곳은, 모임에 소속된 인원들이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들어오거나 나갈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어서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화에 참여하곤 했다. 여느 때 처럼,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 방에 있던 실력자 중 한 명이 대뜸 처음 보는 사람에게 짖궂은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것을 불편하게 여겼던 것인지, 갑자기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대화방에서 나가버렸다

    .

    나는 내심 그 실력자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때문에 이전에도 그에게 대놓고 호감을 표했던 적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매번 그의 반응은 차갑고 무미건조했다. 그럼에도 나는 기회가 될 때 마다 계속해서 그와 대화를 시도하면서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이것을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고, 그에게 장난섞인 말투로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그쪽이 짖궂게 놀리는 바람에 저 사람 삐져서 나갔잖아요~"

     

    그런데 그 다음 그가 보인 반응이, 내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이라서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응, 어쩔래미."

     

    순간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저 말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일까? 혹여나 내가 오해한 것이 아닐까 싶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저를 두고 하신 언행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는 나를 두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며, 자신의 의도를 부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황상 내가 그에게 농담을 던지고 그가 보인 행동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대화의 흐름 자체가 그 방에 있던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향했던 것임이 명백했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그를 향해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은 당연지사, 삽시간에 방 분위기는 폭언과 고성으로 가득한 난장판으로 변해버렸다. 격분한 그는 방에 함께 있던 자신의 지인들을 동원해서 나를 철저하게 짓밟았고, 순식간에 나는 모두가 경멸하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나는 비참하고 억울한 심정에, 이를 지켜보던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를 쓰고 항변을 했지만, 돌아오는건 나를 향한 일방적인 조롱과 인신 공격 뿐이었으니 그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나는 이런 그의 태도가 너무 오만함을 지적했고, 이에 그는 자신이 오만한 이유가 그럴만한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라며 스스로의 태도를 정당화했다.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그와 더 이상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완전히 무의미함을 깨닫고 순순히 물러났다. 그의 가치관은 나와는 너무 달라서, 도저히 어떤 말로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이후, 나는 생전 느껴보지 못한 무력함과 실망감에 홀로 통탄하며, 언젠가 그들과 다시 마주치게 될 일이 생긴다면 그 때는 그들 앞에서 결코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올라서리라는 결의를 다졌다.

     

    그로부터 2년 쯤 지나, 나는 소소하게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며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의 인지도를 조금씩 쌓아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나와 친분이 있던 누군가가 나를 어떤 모임에 초대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고, 그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년 전 나를 괴롭혔던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고, 그때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전혀 기억하는 바가 없었다.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방에서, 그 참혹한 현장을 구경하던 이들이 어디 한 둘이었겠는가. 그만큼 그 때의 상황이 일으켰던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제 와서 굳이 지난 일을 밖으로 꺼내 서로의 얼굴을 붉히는 것도 내 관점에서는 그다지 현명한 행동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내게 했던 행동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그 스스로는 누구와도 적대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췄지만 내겐 전혀 와닿지 않는 변명일 뿐이었다. 만일, 자신이 이전에 정말 그런 실책을 저질렀다면 그것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럼에도 나 역시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지라 쉽사리 용서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가 저런 반응을 보인 것에는 내가 과거의 어중이 떠중이 시절처럼 더 이상 함부로 무시할만한 위치가 아니게 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혹여, 내가 여전히 아무런 발전 없이 보잘것 없는 존재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의 반응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냥 뻔하디 뻔한, 그런 실없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저와 친하게 지낼 생각이 있으십니까?"

    그의 대답은, "물론이지요. 그쪽께서 먼저 이렇게 관대한 제안을 건네주시니, 이를 거절하지 않는게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제스쳐일 뿐이었지만, 한 편으로 나는 옛 격언을 되새기며 이 또한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믿는다.

    '친구를 만드는 것 보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 점에 있어서, 실로 그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가 속한 다른 그룹에서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여전히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를 결박하고 옥죄는 쇠사슬이 되어 스스로를 테두리 안으로 가둬버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결말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그가 2년 전, 내게 무심코 던진 어떤 질문에 대해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만함이 왜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게 그럴만한 실력이 있고, 사람들 또한 나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다면, 그것을 오만함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문득 관념상에서 막연한 형태로만 머무르고 있던 특정 도덕적 명제가, 누군가에 의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을 아직까지도 나는 종종 경험한다.

     

    나는 그럴수록 부당한 외부의 개입에 저항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지금 당신이 받고 있는 평가가 항상 온당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이 남의 평판을 훼손하고, 힘으로 굴복시키면서 얻어낸 성과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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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10/28 11:44:32  210.90.***.98  달님젛아  30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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