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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은 병아리반. 5살은 기린반.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는 학년별로 두 개의 반을 운영했다.
아마 90년이나 91년쯤이었을 것이다. 그 유치원은 나름 조기 교육을 빡세게 시키는 부모들이 선호하는 고급 사립유치원이었다.
유치원 안에는 수영장도 있었고, 초등학교 못지않은 놀이기구들도 많았다.
정글짐, 철봉, 인간 원심분리기, 유격병이나 오를 것 같은 늑철 구조물, 미끄럼틀 ..
어쨋든, 그 유친원은 앞집에 살던 동갑내기 친구, 승훈이와 함께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얘가 사실은 천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는 입학하면 가장 먼저 한글을 쓰는 법을 가르쳤다.
당연히 시작은 ㄱ, ㄴ, ㄷ 같은 자음과 ㅏ, ㅑ, ㅓ, ㅕ 같은 모음을 배우는 것이었다.
첫 수업부터 승훈이의 떡잎은 남달랐는데
선생님이 ㄱ을 열 번 쓰라고 하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냥 ㄱ을 열 번 썼다.
하지만 승훈이는 공책에 먼저 길게 세로줄을 긋고,
그 줄을 기준으로 짧은 가로줄을 열 번 그려 ㄱ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더 빠르고 편하게 쓸 수 있어."
이 새끼가 조금 모자란 새끼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닌것 같다.
글자의 모양과 구조를 제대로 이해한 놈이었다.
니은도 마찬가지였다.
공책에 길게 세로선을 긋고, 그 오른쪽에 짧은 가로줄을 열 번 그어 니은을 만들어냈다.
비읍, 피읍, 리을, 심지어 모음까지도 같은 방식으로 썼다.
만 나이 3~4살, 한국 나이로 다섯살이 떠올리기에는 너무도 창의적이지 않은가.
(이런식으로 썻다)
하지만 천재의 마음을 어찌 범인이 이해하리오.
어린 천재의 창의력을 이해하기에 충청북도 음성 소재의 그 유치원은 너무도 작았다.
범인의 눈에 천재는 그저 별종일 뿐,유치원 선생님은.
그의 공책에는 '노력하세요' 도장을 찍었고, 반대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쓴 내 공책에는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었다.
그때는 내가 승훈이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후에 어설프게나마 한글을 배우고 받아쓰기라는 시험을 볼 쯤
승훈이는 매번 100점을 받았고, 나는 40~50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그놈의 공책에는 참 찰했어요가 찍혔고
내 공책에는 노력하세요가 찍히며 신세가 역전되긴 했다.
아무튼 방년 5세, 지금 떠오르는 그놈의 비범함은 하나 하나 열거하자면 꽤 많은데
지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비둘기 잡기다.
우리 유치원 운동장에는 가끔 비둘기들이 날아왔다.
그당시 비둘기들은 요즘 보이는 돼지와 닭의 중간적인 형태가 아니라 정말 새 였다.
날씬하고 날렵하며 우아한 생명체였다.
아이들은 가끔씩 비둘기가 보일 때마다 잡아보겠다고 쫓아다녔지만,
정말로 새 였던 비둘기들은 유치원생 따위에게 잡힐 만큼 어리숙하지 않았다.
비둘기 잡기로 시작했던 놀이는
항상 돌을 던지거나 손을 휘저으며 평화의 상징들을 쫓아내는것으로 마무리 되었는데
비범했던 남자, 유치원이 알아보지 못한 천재 승훈이는 달랐다.
비둘기를 유인할 함정을 만들었다.
대용량 식용유가 담겼던 철제 들통을 엎어놓고, 그 안에 과자를 놓아둔 것 뿐이었지만
그냥 비둘기가 과자 먹으러 들통으로 들어가면 뛰어가서 잡는게 다 였지만
그 함정의 조악함이 문제가 아니라,
방년 5세, 만으로 치면 3~4살 된 놈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피지컬의 한계를 깨닫고 날아다는 짐승을 잡기 위한 구조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 3~4세의 아이에게 부모님들이 , 날짐승 사냥법을 가르쳤을리는 없을텐데.
90년 91년 당시에는 유튜브도 없었는데
이 새끼 진짜 천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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