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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시선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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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freeboard_1618632
    작성자 : 아름다운시선
    추천 : 1
    조회수 : 200
    IP : 121.145.***.216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7/08/26 12:01:54
    http://todayhumor.com/?freeboard_1618632 모바일
    돌봄 65년… '억척 할매'의 눈물 나는 행복
    [전현석 기자의 觸(촉)] 전쟁고아·지적 장애인 돌봐온 92세 김임순 애광원 원장

    흙바닥의 일곱 갓난 아기
    얼결에 맡게 된 전쟁고아… 못하겠다고 기도했지만
    아기들 곁 떠날 수 없어 평생 함께하겠다고 약속

    별명이 '깡패 할머니'
    애들 먹이고 입히기 위해 체면도 자존심도 버려
    은사님이 美 유학 초청… 아이들 손 뿌리칠 수 없어 두어달 고민하다 거절

    "친딸도 고아들과 똑같이 키워… 나중에(초등학교 고학년) 엄마라고 알려줘"

    봄만 되면 홍역 치러
    아픈 애 둘 데리고 부산행… 배 타고 가다가 숨지기도
    부두에 마중 나온 직원들 다들 붙들고 엉엉 울었죠

    駐韓 美해군과 인연
    진해 美軍기지 찾아 호소… 군의관 보내줘 애들 진료
    애광원에서 봉사 활동 주한 美해군사령관 '전통'

    장애인이 더 좋은 환경 필요
    막사이사이賞 상금 받아… 김우중 회장 찾아가 부탁
    턱없이 모자란 건축비… 후원금 모았는데 2억 부족 김회장이 눈 감아줘


    김임순은 65년 전 그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1952년 11월 갓 돌 지난 딸만 데리고 거제 장승포에 피란 와있던 때였지요. 이화여대 다닐 때 알던 분이 다짜고짜 "같이 갈 데가 있다"고 해서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올라갔더니 흙벽에 짚으로 지붕 올린 움막들이 있어요. 흙바닥 가마니 위에 갓난아기 일곱이 미군 담요에 싸여 누워 있었어요. 탯줄 안 떨어진 아기도 있어요. 부모가 죽거나 버려진 갓난아기들이 길가에 가랑잎처럼 떨어져 있던 시절이었죠. 모두 악머구리처럼 악을 쓰고 우는데, 저를 데려간 분이 '이 아이들 좀 돌봐주세요' 그래요. 그래서 '몇 시간요?' 물었더니 화를 내요. '몇 시간이라뇨? 당신 같은 사람이 이 아기들 안 돌봐주면 어떡하란 말입니까?' 하더니 가버렸어요. 밤새 아이들이 울고, 저도 따라 울면서 기도했어요. '이 아기들 돌보라고 저 대학 공부까지 시켰습니까? 저는 못 하겠습니다'고요."

    김임순 애광원 원장은 6·25 전쟁 중이던 1952년부터 고아와 지적장애인을 돌보고 있다. 중증 지적장애인 시설 이름을 ‘민들레집’으로 지었다. “민들레는 밟혀도 밟혀도 다시 살아나서 꽃을 피워요. 생명이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존재예요.” 김 원장이 애광원 원예치료실에서 장애인들과 산책하고 있다. 흑백사진은 1950~60년대 애광원 모습. / 김종호 기자·애광원

    일곱 고아들이 바꾼 운명

    ―기도가 이뤄지지 않았네요.

    "호호호. 울다 지쳐 새근새근 잠든 아기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어요. 곧 '평생토록 이 아이들과 함께 살겠습니다. 이 어린 생명들을 지켜주세요'로 기도가 바뀌었어요. 그때 왜 '평생'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약속 때문에 65년을 이렇게 아이들하고 살고 있습니다."

    올해 92세인 김임순은 사회복지법인 애광원 원장이다. 1952년 애광원을 설립해 전쟁 고아를 거뒀고, 1978년부터는 지적장애인을 돌보고 있다. 김 원장의 원래 꿈은 '농촌 계몽운동 하는 선생님'이었다. "1949년 이화여대 가사과를 졸업하고 개성에 있던 고려여자사업관에서 교편을 잡았어요. 1950년 4월 결혼한 남편도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어요. 그해 6월에 학교를 잠시 쉬고 남편과 함께 고향인 경북 상주에 갔다가 저는 임신 초기라서 친정에 더 머물기로 하고 남편만 서울로 돌아갔죠. 며칠 후 6·25가 터졌고 남편과 인연은 그걸로 끝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미국으로 건너가 새 가정을 꾸렸더군요. 전쟁 통에 서로 생사를 알 수 없어 생긴 일이었죠."

    ―당시 대학 나온 여성이 거제에서 고아를 돌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 갔을 때 분유통하고 냄비 하나밖에 없었어요. 피란 온 청년들이 흙벽돌을 쌓아주고 온돌도 만들어서 아기들이 간신히 추위를 피하게 됐어요. 땔나무 구할 데가 없어서 바닷가 파도에 밀려온 나뭇조각 주워다 말려서 때고, 도랑물 얼음장 깨뜨려 기저귀 빨고, 빤 기저귀는 몸에 감아서 말렸어요. 가장 급한 건 먹는 문제였어요. 고아들을 받기 시작하니까 아이들이 금세 수십 명으로 늘었어요. 배고파 칭얼대는 아이들 때문에 식량을 구걸했어요. 밀가루 구해 죽 끓여 먹이고 삶은 콩 갈아서 두유를 먹였어요.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던 집안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우리 7남매에게 큰소리 한번 낸 적 없으셨는데… 아기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느라 악쓰게 되더군요. 체면이나 자존심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김 원장은 '깡패 할머니'로 불리곤 했다. 애광원 아이들 복지를 위해선 물불 안 가리고 공무원들에게 호통쳤기 때문이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까.

    "애광원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서 미국에서 편지가 왔어요. 대학 은사님이었죠. '유학 준비 다 해놨으니 미국으로 오라'는 내용이었어요. 두어 달 고민하다 안 갔어요."

    ―아이들 때문이었군요.

    "그때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아이들이 '엄마!' 하고 달려들어요. 제 치마를 빙 둘러서 붙잡고 놔주지 않아요. 애광원 아이들이 손에 쥘 수 있는 엄마의 사랑이 제 치마였어요. 그 손을 뿌리칠 수는 없었어요."

    ―친딸은 누가 돌봤습니까.

    "딸도 애광원에서 다른 애들과 똑같이 키웠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는 제 딸이라고 얘기도 안 했어요."

    김 원장의 딸 송우정(66)씨는 현재 애광원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송씨는 "어렸을 때는 내가 부산 영도다리 밑에 버려진 아이로 알고 자랐었다"며 "편애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일부러 더 관심 없는 척하신 것 같다"고 했다.

    붉은 지붕에 흰색 벽이 인상적인 애광원 전경. 앞에 보이는 항구가 거제 장승포항이다. / 애광원
    품속에서 죽어간 아이들

    지난 19일 애광원에는 부산·진해 미군기지에서 복무하는 미 해군 부사관 24명이 찾아와서 중증장애인에게 점심을 먹여주는 봉사를 했다. 장애인과 함께 컵라면 용기를 재활용해 장구를 만들기도 했다. 주한 미해군은 연간 10여 회 애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사령관(준장)이 재임 기간 중 애광원에 반드시 들러 봉사활동을 하는 게 전통이 됐다. 애광원 장애인으로 구성된 가온 중창단은 지난달 20일 부산 KBS홀에서 국군과 미군이 함께 연 군악 연주회에서 축하 공연을 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애광원과 주한 미해군 인연은 6·25 직후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봄만 되면 아기들이 홍역을 치렀어요. 당시 거제엔 병원이 없었어요. 큰 병원 있는 부산 가는 배는 하루 두 번 있는데, 거제에서 3시간 넘게 걸렸어요. 뱃삯 줄이려고 저 혼자 아기 둘을 업고 안고 배를 탔어요. 그러다 배 위에서 아이 한 명이 숨을 거둔 적도 있어요. 그렇게 죽은 아이 안고 병원에 가면 원장이 ‘죽은 애를 왜 데려오느냐’고 혼을 내요. 부산에서 배 타고 돌아오면 거제도 부두에 애광원 직원들이 나와 있어요. 아이 둘 데리고 나갔다가 하나만 데리고 오는 걸 보고는 다들 붙들고 엉엉 울었죠. 그렇게 제때 치료를 못 해줘 아기 너덧 명을 떠나 보냈어요. 그래서 진해에 있는 미해군을 찾아간 거예요.”

    ―영어를 잘하셨나보군요.

    “잘하기는. 브로큰 잉글리시였어요. 그때는 통역도 없고. 아이가 죽어가니까 ‘헬프 미, 헬프 아워 애광원 칠드런’ 이러면서 손짓 발짓 해가며 울며 사정했죠. 그 얼마 뒤에 진짜 미군 함정이 거제도에 왔고 군의관이 아이들을 진찰하고 치료해주고 갔어요. 수년간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왔는데, 거제도 사람들도 약 받고 주사 맞고 그랬죠. 지금도 나이 든 거제 사람들은 애광원을 ‘미국 해군의 집’이라고 기억하고 있어요.”

    ―다른 구호기관도 열심히 쫓아다녔다고요.

    “우리 정부는 1954년쯤부터 양곡 지원을 해줬는데 통밀이거나 보리쌀, 안남미였어요. 양곡은 1인당 하루 2홉(360mL)이 지급됐는데 그나마 얻기 힘들었어요. 거제에 있다보니 외국 구호기관이 국내에 들어와 있던 것도 몰랐어요. 그러다 우연히 부산에 있던 ‘케어 미션’이란 곳을 알게 돼 찾아갔어요. 식량과 생필품이 담긴 상자를 여러 개 주더군요. 장승포 가는 배에 실으려고 봤더니 주기로 했던 것보다 세 상자나 더 줬더라고요. 리어카에 상자를 도로 싣고 케어 미션에 갔어요. ‘원래 받기로 했던 것보다 더 와서 돌려주려고 왔어요’ 하고 돌려줬죠.”

    ―배고픈 아이들 생각하면 그냥 받아도 됐을 텐데요.

    “아이들 위해 일하는 사람이 양심을 외면해서야 되겠어요. 애광원 원훈이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깨끗합시다’예요. 양심을 지키니까 더 큰 선물을 받았어요. 얼마 뒤에 케어 미션 책임자가 애광원에 찾아왔어요. 뭐 도울 게 있냐고요. 우리 아이들 식당하고 공부방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시멘트, 함석, 목재를 지원해 주겠대요. 목수를 빨리 섭외해서 두 달 만에 다 짓고 낙성식 한다고 그분을 초대했죠. 그랬더니 다른 곳에는 자재 준 지 1년이 돼도 감감무소식인데 벌써 지었냐고 깜짝 놀라요. 저희 건물 유리가 시원치 않다고 봤는지 유리를 선물하겠다고 했는데 안 받겠다고 했어요. 지금 바꾸면 돈만 더 들어간다고요. 그 이후 케어 미션이 애광원에 더 많은 구호물자를 배정해 줬어요.”

    ―외국인들은 ‘팬케이크 원장’이라고 불렀다면서요.

    “5·16 이후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면서 거제에 대우조선소(현 대우조선해양)와 삼성조선소(현 삼성중공업)가 잇따라 생겼어요. 그때 외국인 기술자들이 거제에 많이 들어왔는데 숙소가 없는 거예요. 부산에서 배 타고 오려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마침 그때 백낙준 박사(연세대 초대 총장) 부부가 후원해 줘서 애광원 손님이 기거할 2층짜리 공관을 지었거든요. 조선소 외국인 기술자들이 애광원에 잠시 머물게 됐는데 꽁보리밥을 줄 순 없고 빵은 구할 수 없으니 제가 밀가루로 팬케이크를 만들어 대접했죠. 그때 받은 숙식비로 아이들 키우고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조선소에 오면 애광원에 와서 ‘나 좀 재워주세요’ 했어요.”

    1979년 11월 애광원을 방문한 김우중(오른쪽) 전 대우그룹 회장과 부인 정희자(가운데)씨. 왼쪽이 김임순 원장이다(왼쪽 사진). 주한 미해군은 6·25 직후부터 애광원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1968년 미해군 군의관이 애광원 아이를 진찰하고 있다(가운데 사진). 브래드 쿠퍼 주한미해군사령관은 지난달 7일 애광원에서 지적장애인이 만든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 / 애광원·주한미해군사령부
    기적은 기다리는 자에게 온다

    애광원은 1978년 지적장애인 시설로 바뀌었다. “어느날 애광원 앞에 지적 장애를 가진 아기가 버려졌어요.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됐죠. 1960년대 애광원에는 200명 넘는 고아들이 살았는데, 1977년에는 60여명으로 줄었어요. 애광원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은 장애를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때 ‘이제 고아 말고 장애인을 보살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애광원에는 중증장애인 99명을 포함해 지적장애인 193명이 생활하고 있다. 김 원장은 지적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기관 거제애광학교도 세웠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애빈’을 만들어 제빵과 원예 기술을 가르치고 농장에서 표고버섯과 아채도 함께 키운다.

    정영태 시인은 애광원에 봉사하러 왔다가 ‘피눈물’이란 시를 썼다. “학이가 발작적으로 던진 돌/ 숙이 이마빼기를 깼다/ 피 철철 얼굴을 덮고/ 다섯 바늘 상처를 꿰매어도/ 아얏 소리 한 마디 없는 숙이/ “이 바보야/ 아프단 말도 못해!”/…/ 참다못해 터지는 김 원장의 울부짖음/ 그 눈에 피눈물이 고인다.”

    ―그 시가 원장님 이야기죠.

    “우리 직원들, 선생님들이 정말 고생 많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똥오줌 싼 거 다 치우고 씻기고 옷 입히고 밥 먹이고… 아이들이 밀쳐서 쓰러지고 팔 부러질 때도 있고요.”

    ―즐거운 일도 있겠죠.

    “기적은 기다리면 일어나요. 사랑은 오래 참으며 기다리는 거라고 하잖아요. 한 아이는 10년 전에 말을 하나도 못했어요. 선생님 한 분이 몇 년 동안 어르고 달래고 가르쳤지만 변화가 없어요. 모두들 이제 그만하라고 해도 그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선생님’이라고 한 마디 하는 거예요. 지금은 애광원 카페에서 일 잘하고 있어요. 가온중창단에는 노래를 전혀 못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매일 연습해도 무대만 서면 멀뚱멀뚱해요. 9년 동안 그랬는데, 작년에 드디어 입도 벌리고 춤도 추는 거예요. 기적은 그렇게 와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기적과 기쁨은 오래 기다린 선생님하고 직원들만 체험할 수 있지요.”

    건축비 2억원 깎은 사연

    애광원 건물들은 빨간 지붕에 하얀 벽으로 이뤄져 있었다. 지중해 휴양지를 연상케 하는 외양이다. 내부 시설도 쾌적한 편이었다. 대부분 4인 1실을 쓰고 침대와 이불도 뽀송뽀송했다. 장애인들이 다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곳곳에 마련돼 있다. 김 원장은 1984년 독일 장애인 교육기관인 프뢰벨학교에 다녀온 뒤 애광원 시설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애광원은 장마 때면 곳곳에서 오물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는 1989년 ‘아시아의 노벨 평화상’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뒤 상금 3만달러로 건축을 시작했다. “장애인 건축을 전공한 건국대 강병근 교수를 소개받아 설계를 부탁했는데, 설계한 대로 지으려면 18억5000만원이 필요했어요. 당시 3만달러가 1800만원이었으니까 건축비의 1%도 안 됐죠.”

    ―돈을 어떻게 마련했습니까?

    “애광원에 신세 진 김우중 회장을 찾아갔어요. ‘내가 받은 상금 다 내놓을 테니 건물을 지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김 회장이 ‘돈은 나중에 갚아도 된다’면서 건축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정부기관과 애광원을 후원했던 각종 단체와 사람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후원을 부탁했어요. 극적으로 3년 만에 2억원 모자라는 건축비를 마련해서 시공사에 줬어요. 2억원은 김우중 회장이 눈감아 줬고요.” 김 원장은 애광원에서 이사장직을 맡은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애광원에 그의 소유물이나 지분 또한 전혀 없다.

    ―애광원 시설이 무척 좋습니다.

    “장애인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 집에 있는 장애인은 병원 갈 때 빼고는 바깥 나들이를 할 기회가 적으니까요. 애광원은 장애인만 사는 게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선생님과 직원, 봉사자가 함께 머무는 곳이에요. 보육하고 치료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으려면 시설이 좋아야죠. 장애인과 노약자를 우대하지 않으면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어요.”

    김 원장과 함께 애광원을 둘러보는데 장애인들이 “엄마!” “어머니!” 하고 웃으며 인사했다. 곳곳이 새소리와 꽃향기로 가득했다. 빛과 사랑의 동산(愛光園)이었다.
    출처 전현석 기자
    아름다운시선의 꼬릿말입니다
    좋은 기사가 있어 공유하고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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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26 12:18:37  211.246.***.191  백수네  602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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