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나는 골목 모퉁이에 위치한 단골 국수집에서 돼지고기 몇 점 얹은 쌀국수에 고춧가루를 솔솔 뿌리며 하품을 길게 했다.<br>매운음식을 좋아하는 난 이집 단골이다.<br>'피곤해...'<br>나무젓가락을 집으려 뻣뻣한 고개를 들었고, 무심결에 바라본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투박한 젓가락질이나 찌뿌려진 미간에 왠지모를 짜증이 가득해보인다.<br>국물부터 한 모금 삼키곤 면을 집어들었다.<br>한입 한입 씹을때마다 아삭거리며 씹히는 고추와 팍치의 강한향이 오늘따라 코를 자극한다.<br>문득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br>'그때 그 사람들은 잘지내려나..'<br>약 보름쯤 됐을까..<br>.<br>.<br>.<br>.<br>.<br>.<br>..<br>...<br>그 날은 자정이 넘은 시간, 내가 일하는 곳이 있는 파타야 세컨로드7번가는 매일이 밤새 환락의 거리와도 같지만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손님이 꼬이지 않았다.<br>"마사지 받고가세요~가격표는 여기있어요. 아저씨 맛사지어때요!?"<br>"아이~참... 오늘 손님 정말 없네.."<br>마사지 경력 9년의 베테랑 마담은 손님이 이상하리 만큼 없다며 손사레를 치더니 자정이 다가올쯤 퇴근하였다.<br>강팍한 성격의 소유자인 마담의 퇴근으로 눈치를 약간 덜보게 되었고, 그날 남은 당번은 나와 누언 그리고 홀담당인 첸 이모 셋뿐이었다.<br>이 샵을 방문하는 많은 손님이 비교적 간단한 발마사지보다 타이 마사지를 선호한다.<br>타이 마사지를 원하는 손님이 오면 정말 손이 아프고 힘들지만 손님이 하나도 없는것 보다 좋다. 왜냐면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수 있으니까.<br>돈을 벌어야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br>부자가 되고싶어서.<br>이 곳 샵에서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시 외각을 향해 20여분 달리면 있는 작은 마을에 나의 집이있다.<br>난 이곳에 산다.<br>부모님은 4년전 이혼하였고 난 지금 어머니와 어린 동생 두명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br>아버지는 마약 중독자였다. 내가 태어나기전 부모님은 방콕에 있는 한 평범한 음식점 종업원으로 만나 서로 마음을 키워나가다가 결국 결혼 하였다.<br>함께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나갔지만 아버지는 이후 도박을 하다가 결국 빚을 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약에 빠져버렸다. 내가 22살이 되던해에 아버지는 필로폰 중독으로 사지가 썩어버려 거동이 불편해져버렸다.<br>아버지는 현재 국가에서 운영하는 재활시설에 있다는 정도만 안다.<br>.<br>..<br>...<br>..<br>.</div> <div>잠시 망상에 빠져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누언이 비닐봉지를 흔들며 내 옆옆자리에 앉았다.<br>3년간 이일을 같이 해온 누언.. 나는 그녀가 권하는 점심 때 사온 말린 망고를 먹으며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br>누언은 나와 이곳 샵에서 만난 사회 친구이다.<br>누언은 영어를 잘못하지만 항상 수줍은 미소와 귀여운 얼굴로 많은 이방인들이 종종 마음을 표시하곤 한다.<br>한 번은 40살쯤 되어보이는 백인남자가 누언에게 호감이 있어 마사지 후 리치와 망고, 레드애플 따위가 가득인 과일상자를 선물하였는데 부담을 느낀 누언이 거절한적도 있었다.<br>누언은 귀여운 20살 짜리 아가씨인 반면 나는 별 보잘것 없는 25살 빈민가 청년에 불과하다.<br>내가 누언이라면... 내가 누언이라면..</div> <div> </div> <div>그때쯤 이었을까..?<br>그 날의 마지막 손님이 찾아왔다.<br>누언의 앞에 낯선 이방인 두 명이 서서 뭔가 실랑이를 벌이고있었다.<br>영어를 못하는 누언은 당황한 표정으로 안내표지만을 들고선 손가락으로 가리키다 대화가 잘 안통하는지 새빨간 얼굴로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br>이방인은 동아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뚱뚱한 남자 두명이었다. 한명은 민소매 티셔츠에 붉은 모자를 쓰고있었고 한명은 심플해보이는 남방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전형적인 중국인 처럼 보였다.<br>그들은 타이 마사지를 원했고, 누언은 피곤한지 미간이 찌푸려졌다.<br>잠시 후 탈의실로 안내 받은 이방인들은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연신 킥킥대며, 보통은 한 번쯤 물어보면 될 갈아입었냐는 질문을 두 번 물어볼정도로 아주 느리게 옷을 갈아입었다.<br>그들 둘은 누워서도 정말 시끄러웠다. 중국인들은 정말 상대하기 싫은 손님이긴 하다.<br>하지만 난 미소를 지으며 아무 생각없이 그 동안 틈틈히 공부해온 짧은 영어실력으로 그들에게 몇마디 건네보았다.<br>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시작했던 영어공부가 가끔 도움 될때가 있다.<br>짧은 대화 끝에 그들은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이란걸 알 수 있었다. 시끄러운 중국인보다 한국인은 비교적 조용하지만, 이 곳에선 가끔 한국인들이 중국인보다 더 짜증나는 행동을 보일때도 있다. <br>술을 마시고 싸움을 한다거나 여자를 때린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br>하지만 이들은 생각보다 유쾌하며 친절한 친구들이었고 나도 호의를 가지며 내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한국에대한 궁금증을 말해보았다.<br>휴무일 떄 집에서 티비로 몇 번 한국의 소식을 듣곤했다. 북한의 지도자이름, K-POP, 드라마 등이 갑자기 기억나서 이들에게 물어보았다.<br>"김쭝? 김쭝?"<br>그들은 내 발음이 웃긴지 갸우뚱 거리며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지만 이내 자신들의 발음으로 나에게 교정시켜주었다. <br>그들은 자신들이 남한 사람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편안하고 재미있는 대화가 오가던 도중 나의 서비스를 받는 남방차림의 남자가 자꾸만 내 안마가 아프다며 바우바우(살살해주세요)를 외치자 나와 빨간모자의 남자는 큰 소리로 한 참을 웃었다.<br>깔깔대고 웃다가 옆자리 누언을 보니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 몇 번 눈치만 보더니 마사지만 묵묵히 하고있었다.<br>누언은 오늘 어머니가 생신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당번근무라서 이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기에 조금은 기분이 안좋아보였다.<br>누언이 조금 걱정되긴했는데 어쩔수 없었다.<br>그보다도 누언이 서비스중인 붉은모자 청년이 자꾸 아까부터 누언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이 일을 오랫동안해보면 사람들이 어떤생각을 가지고있는지 대충 알 수있다.<br>세상엔 말이 안 통해도 느껴지는 그런 것이있다. 그들의 태도가 조금은 신경은 쓰이지만, 그들에겐 돈이 있고 우리에겐 돈이없다.<br>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는 이치이다. 돈은 곧 힘이다.<br>.<br>..<br>...<br>한 참을 함께 웃으며 서비스하고 나니 어느덧 1시간이 훌쩍 지났다.<br>그들은 요근래 가장 재미있는 손님들이어서 나도 덩달아 신명나게 서비스를 마쳤다. 이 두 여행자는 마지막 까지 히히덕거리며 탈의를 마쳤다.<br>그들은 우리 둘의 서비스가 최고라고 하였고 연신 엄치손가락을 치켜세웠다.<br>나의 요청으로 그들이 스마트폰으로 재생해준 SS501의 무대공연를보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잠시나마 마치 한국에 있는듯 정말 행복했다.<br>'언젠가는 동경하던 한국에 꼭 가보리라..'</div> <div>잠시 뒤 옷을 갈아입은 그들은 계산대에 서서 팁을 줄요량인지 자꾸 주머니를 만지며 주뼛거렸다.<br>이미 퇴근시간은 훌쩍넘은 새벽 2시가 가까웠다. 누언은 어서 집에가봐야한다고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었지만, 나는 이들 여행자들이 너무 재밋어서 몇 마디라도 더 해볼 생각이었다.<br>이윽고 이들의 주머니에선 100바트 지폐가 나왔고, 생각보다 큰 돈을 주길래 너무 고마운 마음에 어쩔줄몰랐다.</div> <div>사실 이들은 우리에게 각각 40바트를 줄생각이었나보다.<br>거스름돈을 요구하는듯 주춤거리는 그들에게 돈을 바꿔 주고싶었지만 잔돈이없어 첸 이모까지 퇴근해버린 마당에 조금 난처한 상황이 벌어졌다.<br>누언은 그냥 정중히 그들에게 돈을 돌려주자고 하였다. 그녀의 표정에선 피곤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40바트면 동생들이 좋아하는 싱싱한 망고를 잔뜩 사줄수 있는 돈이기에 조금 망설여졌다.<br>'에이...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니.'<br>잠시 고민 끝에 난 그들에게 그냥 돈을 돌려주었고, 마지막까지 파안을 띄던 그들은 정말 미안 하다며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였다.<br>.<br>..<br>...<br>..<br>.</div> <div>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다음날 오지않았다.<br>여행객 대다수가 그렇듯 바쁜 일정에 따라 낯선 이 나라 어디선가 즐겁고 신기한 것들을 보고 체험하며 그렇게 다녔을 거라...<br>그들이 이 나라에서 정말 즐겁게 여행했기를 빈다.<br>웃음이 나지 않는 요 몇일간이었기에 정말 그들때문에 서로 배꼽을 잡고 깔깔대던 그때가 그립다.</div> <div>어제도 저녁에 한국 손님 두명이 샵에 방문했었지만 그들은 내가 던지는 몇 마디에 꽤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br></div> <div>대기줄이 빽빽한 국수집 다음 손님을 위해 국수 사발의 마지막 국물 한 모금을 훌훌 털어 넣곤 자리를 떠났다.<br>어쩌면 '어제의 손님'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그 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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