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나는 원래 냉면을 좋아했다.</div> <div>그러나 내가 좋아했던 건 실은 갈비집 후식 스타일의 새콤달콤하고, 얇게 저민 수박이 올라가 있는,</div> <div>십자모양으로 가위질을 해서 먹는, 그런 냉면이었다.</div> <div>이십대때, 마포에서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했던 여동생은 내가 방학에 올라오면</div> <div>가끔 선배들에게 소개받은 맛집을 데리고 갔었다.</div> <div>그 중 한군데가, 학교 후문 근처에 있는 정말 허름한 (90년대 후반;;;) 코딱지만한 평양냉면 집이었는데</div> <div>가끔 가수 현미가 와서 먹고 간다는 집이었다. (그 집이 그 유명한 ㅇㅁㄷ 라는건 최근에 알게되었다)</div> <div>'서울'의 대단한 맛집이라길래 먹어본 당시의 평양냉면은 내겐 그냥</div> <div>'생수에 메밀면 말아먹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서, 다신 평양냉면이란 건 돈주고 사먹진 않았었다.</div> <div> </div> <div>그는 냉면을 좋아한다고 했다.</div> <div>그리고 내게, 기가막힌 집이라며 서울시내 몇 군데를 추천했는데 그 중 한 집이 청계천 근처의 유명한 평양냉면 집이었다.</div> <div>(물론 여기도 정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3글자인데, 검색하면 나오기야 하겠지만 이제 그 집 이름을 알아서 무엇하랴...)</div> <div>뭐 딱히 식도락에 관심이 없어 거기까지 그걸 먹으러 혼자 갈일도 없고,</div> <div>한국에 몇달에 한 번 오는 남자친구와 함께 먹겠노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div> <div>그리고 더운 여름, 그가 왔다.</div> <div> </div> <div>하루이틀? 즐겁게 데이트를 하고 사흘째 쯤 되는 날 아침에 차를 가지고 그를 만나러 갔다.</div> <div>그는 내 차 트렁크에 짐을 싣다가 갑자기 화를 내며 돌아서서 가버리고 말았다. </div> <div>뭔가 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미스가 있었던 일이었다.</div> <div>그냥 길에 남겨진 나는, 목청것 불러도 돌아오지않았다.</div> <div>그리고 그날 저녁 다시 만났다.</div> <div>하루종일 영문도 모르고 울기만 하던 나는 저녁에 그를 만나 카페에서 이별을 강요받았다.</div> <div>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너랑 나랑은 맞지가 않으니 헤어지고 싶다는게 그의 이유였다.</div> <div>오늘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에 카페 앞에서 안녕을 고하고 그는 돌아서서 가버렸고,</div> <div>나는 혹시 돌아올지 모르는 그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div> <div>밤새 울었나보다.</div> <div>아침이 되었고, 겨우 일어나 학교에 가며 메시지를 나누었다.</div> <div>밤새도록 울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입이 말라 시원한 냉면이 먹고싶다고 하니</div> <div>그가 조심스럽게 '그럼 ***로 나올래?'라고 한다.</div> <div>그렇게 그 평양냉면 집에서 재회 아닌 재회를 했고 우린 다시 즐거운 데이트를 하였다.</div> <div> </div> <div>그 평양냉면은, '생수에 메밀국수 풀어놓은' 평양냉면이 아니다.</div> <div>육수국물은 고소하고, 뭔가 고명같은것도 많이 들어있다.</div> <div>무엇보다, '순면'이라고 하는 면 자체의 묵직한 맛이 일품이었다.</div> <div>정말 맛있었다. 면을 다 먹고, 국물까지 엄청 마셨던 기억이 난다.</div> <div>전날 흘린 눈물에 탈수기운이 그렇게 보충되었나보다.</div> <div>그런데, 그 식당에 대한 기억은 사실은...</div> <div>테이블이 너무 커서(?) 그날 마주 앉았던 남자친구가 너무 멀었었다는 사실이다.</div> <div>원래 불고기도 파는 식당이라 그런지 테이블이 과하게 크다.</div> <div>식사를 하면서 남자친구의 얼굴을 처다보고, 표정을 살피고, 얘기를 나누는걸 좋아하는데,</div> <div>그 집의 테이블은 너무 멀었었다.</div> <div>그게 작년이었나, 제작년이었나...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그 이후로도 몇번, 남자친구때문에 많이 울고 난 다음날이면</div> <div>시원한 그 냉면국물을 먼저 마셔 입을 적시고, 그 순면으로 기분을 달래고 싶은 생각이 늘 들었다.</div> <div>그리고 한달전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이별을 고했을때도...</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