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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논란 중인 박진성 시인과는 꽤 오랜 시간 페친이었지만, 직접 대화를 나눈 건 단 한 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류근 시인 여혐 논란' 때, 나는 그 혐의와 그 혐의가 제기되는 방식 모두가 부당하다는 입장이었기에 그에게 돌팔매질을 하던 몇몇 이들과 약간의 논쟁을 벌였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박진성 시인이었다.
그는 문단내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또 다른 시인의 글을 공유하면서 류근 시인에대한 비난에 가세했다. 문인이라는 직군에 속한 이들이 밥먹고 술먹으면서 실제 말과 행위로 저지르는 성희롱과 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에, 작품 내적으로 깔린 미소지니 정서로 논란이 되고 있는 작가를 호명한 것이다. 그러면서 박 시인은 자신이 첫사랑에 실패해 여성혐오 정서를 갖게 되었고, “시가 좋다고 찾아오는” 여자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온갖 여성혐오 행태들에 대한 일지를 써 훗날 남자 조카에게 전달할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현재 담론계에서 논의되는 ‘여성혐오’는 서구의 misogyny를 불성실하게 번역해 옮긴 개념으로, 첫사랑에 실패해 여성집단 전체에 부정적 인식("여자들은 다 xx해")을 품게되는 식의 (일반적 의미의) 여성 혐오와는 다르며, 둘은 겹치지 않는 지점이 훨씬 넓습니다. 쓰시고 계신 일지가 조카에게 전달되기 전에, 예를 들면 페북 상태창같은 곳을 통해 먼저 세상에 뿌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대의 대세는 전향서에 지장 찍은 진성님을 흔쾌히 용서할 것이고, 그 내용이 자학적일수록 박수갈채는 우렁찰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신을 찾은 뒤에도 속된 삶은 끝나지 않겠지요. 또 많은 여자들이 "좋다고 찾아올” 것이고, “오랜 아픔”보다 더 오랜 자기만족도 찾아올 겁니다. 성찰보다 성찰의 전시가 풍성한 세상입니다. 허기진 비만의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그는 몇번을 반복해 읽었다며, 생각보다 훨씬 겸허한 자세로 그 댓글을 받았다. 도량이 큰 사람이거나 자기혐오가 강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논란이 불거진 후 “페미니스트인 척 하더니 알고보니 성폭행범이었네?”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내게 그건 반전이 아니라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무려 PC통신 시절부터 접해온 그 허다한 남자 페미니스트 중 '알고 보면 개X끼'가 아닌 인간은 통계적으로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내가 페미니즘에 과장되게 위악적 태도를 취하게 된 근본 원인이다.
상대가 남성이건 여성이건 어른이건 아이건 상관없이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굳이 온라인에서 “남자라서 미안합니다” 식의 쇼를 하지 않는다. 그건 자신이 개인으로 저질러온 추행에 대한 책임을 남성이라는 귀속집단에 전가시킨 뒤 억지로 거리를 벌림으로서 자가 면죄부를 얻으려는 비겁한 행위일 뿐이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내 딸의 상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남자보단 꼴마초라 칭하는 남자를 고를 것이다. 압도적으로 그 편이 안전하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미 충분한 비난을 받고 있고 스스로를 방어해낼 근육도 없어보이는 박진성 시인에게 돌멩이 한개분의 비난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혹시라도 그가 자기성찰을 담은 그 '여혐일지'를 스스로 공개하는데 있어 내 댓글이 눈곱만큼이라도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진 않았을까 하는 주제넘은 우려와 미안함 때문이다.
그 동인이 무엇이었건, 그는 이미 자신의 행위들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하는 중이었음을 나는 느꼈었다. 오늘도 자신의 더러움을 마주보는 대신 편리한 온라인 코스프레로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한남페미들은 그게 바로 자신의 거울상인 줄도 모른채 다시 한번 돌파매질에만 열중하고 있는 듯 하다. 박 시인이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 그 잘못만큼 대가를 치르길 바란다. 그리고 이제 아무 사심없이 그 일지를 완성하기 바란다. 나는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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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프로 글쟁이는 다릅니다.
까는 글에 비속어를 넣지 않아도 가루를 넘어 원심분리가 가능하다는걸 보여주는 명문이군요...
출처 | https://www.facebook.com/lifinfan/posts/10153824558931502?pnref=sto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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