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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bestofbest_153694
    작성자 : aeio (가입일자:2012-07-24 방문횟수:265)
    추천 : 413
    조회수 : 53207
    IP : 121.173.***.42
    댓글 : 6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03/19 08:50:27
    원글작성시간 : 2014/03/19 02:18:04
    http://todayhumor.com/?bestofbest_153694 모바일
    미군과 족구한 이야기.
     
    군대에서 처음 받아보는 독수리 훈련이 끝났을때였다. 비록 미군들과 같이 훈련을 받은건 아니었지만 훈련기간 동안
    밤에는 조명탄도 뻥뻥 터트리고 헬기도 날아다니는걸 보며 내가 느낀 점은 역시 미국은 뭘 해도 스케일이 틀리구나
    였다. 그렇게 우리부대 훈련이 종료되고 다음날 아침회의시간에 소대장에게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몇일 후 철수하는 미군들이 들러 하루정도 주둔해 있다가 간다는 것이었다. 아무생각 없이 흘려듣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잽싸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미군들이 온다는 날은 내가 위병소 근무를 서는 날이었다.
     
    미군들이 오기도 전부터 난 겁에 질리고 말았다. 평소에 우리나라를 너무 사랑하기에 영어를 멀리했던 내가 과연 그들을
    맞이할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내무실을 나가는 소대장을 붙잡고 그날 몸이 몹시 아플 예정이니 근무를 좀 바꿔주면
    안되겠냐고 사정했지만 소대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와유 암 파인 앤쥬 이상의 회화가 불가능 했던 나는 안절부절
    해지기 시작했고 지금이라도 미뤘던 영어공부를 시작해야하나 고민하던차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고참이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어차피 탑승자 확인은 위병조장인 내가 하는게 아니라 위병소 근무자들이 하는데 니가 왜
    걱정을 하느냐는 거였다. 그제서야 나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고 대신 그날 위병소 근무자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무실엔 입시시즌이라도 온건지 영어공부 열풍이 불었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미군 차량들을 통과시키고 근무를 끝낸 나는 안도감과 피로가 겹쳐 내무실 한켠에서 잠을 청했다.
    오침이 끝나고 나니 내무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다들 밥이라도 먹으러 갔나해서 내무실 밖으로 나가니 연병장 한켠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미군들에게 사제 담배를 얻어 피우며 어설픈 사교활동을 즐기고 있었다. 어설픈 발음으로
    김미 시가렛 땡큐 땡큐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난 내가 잠든사이에 6.25 직후로 타임슬립이라도 한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쉬는시간에 나는 연병장 한귀퉁이에 앉아 미군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차량 근처에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던 미군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놀란건 역시 그 크기였다.
    흔히 험비라고 말하는 미군 군용차량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컸다. 그 전엔 영화에서나 봤었기 때문에 영화에서
    봤을 때는 안도 좁아보이고 모양도 지프차처럼 생겨서 우리 레토나랑 비슷한 사이즈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차가 작은게 아니라 사람이 큰거 였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가 타고다니는 닷지트럭과 거의 비슷한 사이즈
    였다. 그 크기에 감탄해 역시 양놈들은 스케일이 틀리구만... 이라고 혼자 중얼 거리고 있을 때 그쪽에 있던 한 미군과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미군은 딱 봐도 람보가 연상될 정도로 건장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그가 몸을 일으켜 내쪽으로 다가오자
    난 당황하기 시작했다. 설마 내말을 들은건가?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하고 시작했고 그는 점점 더 가까워 지고 있었다.
    혹시 말이라도 걸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지만 여기서 꼬리를 내릴 순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송강호가 말한것처럼 유.. 유. 존슨? 로버트 존슨? 이라고 말하며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나라는 나의 생각은 그의 건장한
    팔뚝을 본 순간 씻은듯이 사라졌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미 나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그는 거의 코앞에 도달했고 나는 패닉에 빠졌다. 왠지 내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나에게 달려들어
    유 퍽킹 코리안 아미! 라고 외치며 그 굵은 팔뚝으로 래리어트를 날릴것만 같았다.
     
    이미 그는 바로 앞까지 도착했고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하세요? 아임쏘리 돈 킬미라고 말할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낯설은 얼굴에서 나오는 친숙한 말을 듣고 바보같이
    어버버거리고만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는 여기 화장실이 어딥니까? 라고 물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한국말
    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줬고 그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유유히 자리를 떠나갔다.
    난 문화충격에 한참을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방금 텍사스에서 소떼를 몰고 온것 처럼 생긴 외모였지만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시동리에서 태어난것 처럼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오후 훈련이 끝나고 밥을 먹고 오는 길에 나는 그를 다시 발견했다. 이번엔 용기를 그에게 다가가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건넸다. 그렇게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 분이었고 자기 자신도 한국에서 꽤 오랜시간을 살다 미군에 입대했다고 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강원도의 향기는 아마
    그의 어머니의 영향이었을 것이었다. 한참을 얘기를 나누며 제법 친해진 그에게 나는 그에게 심심한데 족구내기나 한판
    하는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첫만남에서 잃어버린 나의 자존심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족구를 접해볼 기회가 없는 미군으로써는 매일같이 족구를 즐기는 우리를 이길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다. 그렇게 미군과 국군의 자존심을 건 한미전이 성사되었고 때 아닌 이벤트에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한국인이 족구를 잘하는 게 아니라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이 족구를 잘하는 거라고.
    큰 키에서 떨어지는 그의 스파이크는 핵폭탄을 방불케 하는 위력이었고 그런 그의 리틀보이 스파이크에 우리들은 철저히
    유린당했다. 진주만이 공습당하듯 우리는 반격할 생각도 못하고 이리저리 피해다니기에만 급급했고 경기 내내 지켜보는
    관중들의 탄식만이 온 연병장을 슬프게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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