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class="se_container"><br></div> <div class="se_doc_title_bottom"><br></div> <div class="se_doc_header_end"><br></div> <div class="se_component_wrap sect_dsc __se_component_area"> <div class="se_component se_paragraph default"> <div class="se_sectionArea"> <div class="se_editArea"> <div class="se_viewArea se_ff_nanumgothic se_fs_T3 se_align-left"> <div class="se_editView"> <div class="se_textView"> <p class="se_textarea"><span><span class="__se3tag"><a class="tag" href="http://blog.naver.com/PostListByTagName.nhn?blogId=ha_eun_love&encodedTagName=64" target="_blank">#64</a></span><br>같이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br>종종 집사는 그런 궁금증을 가져 봅니다.<br></span><span>그것은 십여 년째 혼자서 생활해 오고 있는 집사의 근본적 체험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남의 집 엿보기' 같은 상상이자 욕망이 변형된 결과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br></span><span>그리고 그것은 야옹이를 들인 후 같이 살아오면서, 들이기 전과 비교해 봤을 때 집사의 삶이 어떻게, 또 그리고 얼마나 변하고 달라졌는지 시나브로 곱씹어 보는, 일종의 화두에 바탕한 수행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br>사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집사는 1여 년 가까이 같이-삶의 의미를 야옹이와 함께 만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같이 만들어 갈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br>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꼬이고 보니, 집사는 다시금 같이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br></span><span>인간만 해도 그렇습니다.<br></span><span>왜 같이 살아가나? 싶을 정도로 티격태격 싸우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난무하는 집들이 있습니다. <br>혹은, 왜 같이 살아가나? 싶을 정도로 가족 내에서 하나의 고립된 섬들로만 존재하는 집들이 있습니다. </span><span><br></span><span>그럼에도, 그네들은 왜 같이 살아갈까?<br></span><span>차라리, 저렇게 같이 살아가기보다는 헤어지는 게 훨씬 더 살맛 나는 삶이 되지 않을까?<br></span><span>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집들이 있습니다. <br>단순히 그런 집들이 유지되는 방식을 관성이나 타성에 젖어버린 무기력함이나 무이성적 판단의 결과로써 치부해버리면, 차라리 그게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볼 때는 분명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그래서 겉으로 봤을 땐 부적절해 보이는 그런 같이-삶의 양태조차도 온전히 유지시키는, 또 다른 의미 부여 동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br></span><span>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인간들의 논리적인 사고방식이나, 선악미추 같은 가치판단 따위로는 결코 규정될 수 없는, 좀 더 깊거나, 좀 더 높거나, 혹은 아예 그런 것들을 뚫어버리거나 하는, 어떤 틀이지 않을까 무람없이 추측해봅니다. </span><span> <br></span><span>그것이 인연이든, 운명이든, 섭리든, 업보든 그 </span><span>어떤 것으로 불리든지 간에 말입니다.<br></span><span>그리고 인간은 이런 이름들 앞에서, 그 이름이 호명하는 어떤 인간 너머의 존재 앞에서, 하릴없이 할 말을 잃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br></span><span></span><span>그렇다면, 지금껏 집사가 야옹이와 같이 살아온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br></span><span>아니, 오히려 이제서야, 그 녀석과 같이 못 살지도 모르는 이제서야, 그런 문제가 '문제'로서 드러나게 됐던 것은 아닐까?<br></span><span>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br></span><span>다시 말해, 집사는 지금껏 필연과 운명을 순전히 자기 입맛에 따라서만, 자기 이익의 대차대조표에 따라서만, 그렇게 마음 편하게 꾸며내고 포장해왔던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br></span><span>순전히 겉으로 봤을 땐 그럴듯하고 행복해 보이지만, 실상은 애써 우리에게 부과된 필연과 운명을 거부해왔던 그런 같이-삶을, 집사는 말 못하는 야옹이를 들러리 삼아 그렇게 마음 편하게 조작해온 것은 아닐까 의심이 일었던 것입니다.<br>같이-삶의 의미가 어떻든 하릴없이 그 삶을 벽에다 칠하며 살아내는 저 위의 집들과 달리, 우리는 같이-삶의 의미를 매순간 찾아놓고도 그것을 허공에다가 뿌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br></span><span></span><span>처음에, 집사는 분명 우연이란 씨앗을 심으며 야옹이를 길거리에서 만나게 됐지만, 우리가 같이-삶으로 피워낸 의미의 꽃은 분명 필연의 빛깔이었다고 믿었습니다.<br></span><span>그 녀석과 같이 먹고, <br></span><span></span><span>그 녀석과 같이 잠자고, 깨고, <br></span><span>그 녀석과 같이 웃고, 슬퍼하면서</span><span>, <br></span><span>우리는 그렇게 필연이 되었고, 운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br></span><span>그 과정은 분명 집사와 그 녀석이 함께 노력하며 일군 값진 같이-삶의 열매 또한 탐스럽게 매달고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는 필연과 운명이란 빛깔로 아름답게 채색된 같이-삶의 열매를 따먹고 싶어했던 것입니다.<br>하지만, </span><span>우리는 지금 또 그렇게 헤어져 버렸습니다.<br></span><span></span><span>'우리'라는 말조차 집사 혼자서 되뇔 뿐, 의미의 진동은 그 녀석에게까지 다가들며 울리지 않고 있습니다. <br></span><span>이것도 필연이 되었고, 운명이 되었다,<br></span><span>라고는 차마, 우리가 키운 </span><span>같이-삶의 열매가 그런 필연과 운명이란 빛깔로 슬프게 채색되었다,<br></span><span>라고는</span><span> 차마, </span><span>내뱉고 싶지 않았습니다. <br></span><span>하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식으로 그렇게, 필연과 운명을 뇌까릴 자격은 인간에게 없었습니다.<br></span><span>그 녀석과 같이 잘 지낼 때는 그것이 필연이며 운명이고, 그 녀석과 헤어져 지낼 때는 그것이 필연이 아니고 운명도 아니다.,<br></span><span>라는 식으로 그렇게, 마음 편한 결정을 내릴 자격이 인간에겐 없었습니다. <br></span><span>그렇다면, 그냥 이 상황을 그런 이름으로 곱게 갈아입혀 경외하듯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가? <br></span><span>그 어떠한 역할도, 대응도, 반항도, 할 수 없으니까? <br></span><span>이 인간 너머의 세계라고 생각되는 필연적이고도 운명적인 상황 앞에서는? <br></span><span>그러니, 우리가 키워왔던 같이-삶의 빛깔이 그렇게 갑자기 어두워져도, 정녕 그대로 어둡게 둔 채 계속 나아가야만 할 뿐인가?<br></span><span>하지만, 그럼에도 이거 하나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br></span><span>지금 당장 우리에게 비치는 저 너머 그 필연과 운명이란 열매의 빛깔은 참으로 어둡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은 분명 집사와 그 녀석이 함께 노력하며 일군 같이-삶의 열매 또한 덜 어두운 빛깔로 매달고 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br></span><span></span><span>하늘에서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br></span><span>갑자기 어그러지고 망가진다고, 우리가 여태껏 만들어 온 우산을 차마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br></span><span>비록 우리의 우산이 비바람을 막아내는 데 역부족이라고 하더라도, </span><span>지금 당장은 그 우산에나마 의지하여 비바람을 피해야만 했습니다. <br></span><span>그것이, 하릴없이 비바람을 맞겠지만 그럼에도 덜 맞는 유일한 방안이었습니다.<br></span><span>실상, 저 너머의 필연과 운명은 어차피 인간 세계에 오롯이 발붙일 수는 없는, 그런 어떤 것이었습니다. <br></span><span>그러니, 그 필연과 운명 아래에서 인간이 바꾸고 따먹을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과 수고만이 요구될 따름이었습니다. <br></span><span>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그때 겸허하게 인정하고 물러나도 늦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br></span><span><span>집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span><br></span><span><span>그것이 </span></span><span><span>집사가 집사일 때까지 허락된 유일한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span><br></span><span><span>포기하지 않겠다 마음먹었습니다.</span><br></span><span><span>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그 녀석과 만나 대화해야겠다 작정하였습니다. </span><br></span><span><span>그래서, 그 녀석을 다시 데려오는 게 차후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겠지만, 설령 그 삶이 지금의 삶보다 좋지 않더라도, 감히 '좋지 않을 것이다' 단언하지 않기로 다짐하였습니다. </span><br></span><span><span>좋다, 좋지 않다, 라는 건 항상 함께 가는 것이지, 어떤 상황에 따라 좋다만 좋이 많고, 좋지 않다는 좋이 없고, 하는 그런 식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span><br></span><span><span>그만큼 좋지 않은 순간이 있고, 또 많으면, 그만큼 좋은 순간이 있고, 또 많다고, 그렇게 믿기로 결심하였습니다.</span></span></p><span><span></span></span></div><span><span></span></span></div><span><span></span></span></div><span><span></span></span></div><span><span></span></span></div><span><span></span></span></div><span><span></span></span></div> <div><span><span><br></span></span></div> <div><span><span><br></span></span></div> <div><span><span><br></span></span></div> <p class="se_textarea"><span><b><br></b><span> </span></span><span><br></span></p> <div class="autosourcing-stub-extr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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