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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accident_2122
    작성자 : 헨리죠지
    추천 : 2
    조회수 : 2503
    IP : 219.255.***.203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5/09/01 15:39:22
    http://todayhumor.com/?accident_2122 모바일
    약혐] 스레브레니차 학살 (srebrenica massacre)
    * 시신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포스팅하는 글은 보스니아 내전중에 일어난 스레브레니차 학살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유렵의 킬링필드 라고 불리며 '인종청소' 라는 명목 하에 세르비아인들이 일으킨 이 학살은 최소 25000명이상의 희생자를 낸 2차 세계대전 뒤의 가장 규모가 큰 학살로써 현재 기록되어 있다.

    당시 희생되었던 피해자들의 유골과 시신은 아직도 스레브레니차지역에서 발굴 중이며 관련된 기록들 역시도 계속해서 국제적 차원에서 수집중에 있다.
     
     

    묘 (1).jpg

     ▲ 학살당시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묘지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1995년 7월 일어나 수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사건이다.

    보스니아 내전 중에 터진 이 사건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스레브레니차 지역에 살고 있던 25,000~30,000명의 보스니아인들은 라트코 믈라디치 장군 휘하의 스르프스카 공화국 군대에 의해 인종 청소의 일환으로 살해당했다.

    스르프스카 공화국 군 외에도, 1991년까지 세르비아 내무부의 일부로 공식적으로 활동했던 준군사조직 슈코르피오니도 이 사건에 개입했다.

    당시 국제 연합은 스레브레니차를 UN 보호 안전 지역으로 선포한 상태였고, 400명의 무장한 네덜란드 평화군이 주둔 중이었으나 학살을 막지 못 하였다.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량 학살이었다.
     
     
    2004년에는 헤이그에 있는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에서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이 명백한 학살 (genocide) 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장 시어도어 메론의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보스니아의 이슬람 교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보스니아에 주둔하던 세르비아군은 보스니아인들을 학살했다.

    그들은 보스니아 이슬람 교도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던 4만 명의 스레브레니차 내 이슬람 교도들을 숙청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군인과 민간인, 성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남성 포로들의 개인 소유물과 신원서를 강제로 빼앗았으며, 고의적으로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만을 근거로 삼아 살해하였다.
     
     

    8.jpg

    2.jpg

    ▲ 위에서부터
    인종이 다르단 이유만으로 학살에 휩쓸린 어린 아이들의 시신과
    산에서 발견된 학살 피해 남성의 유골.
     
     

    2007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러한 ICTY의 판결문을 재확인하여 스레브레니차에서 벌어진 사건이 계획적 대량 학살이었다고 발표하였다.

    또 ICJ는 세르비아가 “인종 대량 학살을 방지할 의무를 저버렸”으며, 학살 관계자들을 ICTY에게 송환하는데 협조할 것을 요구하였다.


    ICTY에게 기소된 라트코 믈라디치는 2010년 현재까지도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이며 세르비아나 스르프스카 공화국에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살해당한 이들은 대부분 남자와 10대 소년들이었으나, 이외에도 15세 미만의 소년, 65세 이상의 남자도 피해자에 포함되었으며, 아기도 살해당했다는 보고도 있다.

    보스니아 실종자 관련 연방위원회가 보고한 실종 및 살해당한 사람들의 임시 리스트에는 8,372명의 이름이 실려있으며, 그 중 약 500명이 18세 미만이었고, 수십 명의 여자들도 기록되어 있다.

    2010년 3월까지, 6,414명의 학살 희생자가 DNA 분석으로 신원 확인이 되었고 3,647명의 피해자가 스레브레니차 학살 기념 센터에 묻혔다.
     
     
     
    라트코_믈라비치2(오).jpg

    라트로_믈라비치.jpg

    ▲ 스레브레니차 학살의 주범중 한명으로 지목되는 라트코 믈라비치.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서 "발칸의 도살자"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해지게 된다.
     
     
     
    집단 처형
     
    스르프스카 공화국 군은 7월 13일, 브라투나츠-콘예비치 폴예 도로에서 가장 많은 수의 포로를 포획하였다.

    포로들은 산디치, 크라비차의 농업 창고, 콘예비치 폴예의 학교, 노바 카사바의 축구장, 루크의 마을 학교 등에 모였다.

    이들은 우선 수색을 당한 후 더 작은 그룹으로 쪼개졌다.

    조란 페트로비치 기자가 제작한 비디오에선, 

    한 세르비아 군인이 인터뷰에서 도로에서 항복한 이들이 3~4000명이 된다고 얘기를 한다.

    7월 13일 늦은 오후 도청한 무선 통화에서 포로의 총 수는 6000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네덜란드 대대의 프랑켄 소령이 세르비아 군의 라디슬라프 얀코비치 장군에게 들은 얘기와 같다.
     
     
     
    4.jpg
     
    ▲ 민간인 거주지역에서 학살뒤 찍힌 사진



    포토차리 밖으로 여자들을 이송시키는 작업이 끝난 지 한 시간 후, 드리나 군단 장교들은 남자들이 타고 있는 버스의 행선지를 바꾸었다. 

    이송 작전을 위해 7월 12일 버스를 대기시켰던 크르스마노비치 장군은 산디치에 모인 남자들을 따로 모을 것을 명령하였으며,

    그들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건초더미에 소유물을 던지게 하고, 그중 값나가는 것은 직접 넘길 것을 명령하였다.

    오후 동안, 산디치에 있는 그룹을 찾은 믈라디치는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며, 전쟁 포로 대접을 받아 이후 포로 교환에 쓰일 것이고, 가족들은 안전하게 투즐라로 호송되었다고 말하였다. 

    남자들 중 몇몇은 다른 지역으로 호송되었으며, 몇몇은 크라비차의 창고로 걸어갔다. 

    노바 카사바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브라투나츠로 옮겨진 이들은 대열에서 체포된 보스니아인들과 만났다. 

    이후 이 포로들은 여기서 거의 대부분 살해되었다. 

    어떤 경우는 한 사람 씩, 혹은 작은 그룹으로, 혹은 임시로 머물던 장소에서 살해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치밀하게 계획된 집단 처형의 형태로 살해당했으며, 이는 1995년 7월 13일 스레브레니차 북쪽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집단 처형은 정교한 패턴으로 이루어졌다. 

    우선 남자들은 빈 학교나 창고로 끌려갔다. 

    그 곳에서 몇 시간을 머무른 후, 그들은 처형 장소로 버스나 트럭을 타고 실려갔다. 

    처형 장소는 일반적으로 고립된 장소였다. 

    포로들은 비무장 상태였으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대를 씌우거나 손을 뒤로 묶고 신발을 벗기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처형 장소에 도착 후, 사람들은 소그룹으로 나누어져, 줄을 선 채로 총살당했다. 

    처음 총격에 살아남은 이들은 추가 사격으로 사살되었다.



    7월 13일 아침 : 야다르 강

    7월 13일 야다르 강에서는 오전부터 소규모의 처형이 이루어졌다. 

    17명의 남자들이 버스로 실려와 야다르 강가에 도착하여 사살당했다. 

    한 명은 엉덩이에 총을 맞은 후, 강으로 뛰어들어 탈출에 성공하였다.
     
     
     
    현장.jpg

    ▲ 후에 강근처의 숲에서 발굴된 희생자의 유해들
     


    7월 13일 오후 : 체르스카 계곡
     
    첫 대규모 집단 처형은 7월 13일 오후 콘예비치 폴예의 서쪽에 위치한 체르스카 강 계곡에서 이루어졌다. 

    나무 사이에 숨은 한 목격자는, 두세대의 트럭과 장갑차, 불도저가 체르스카로 가는 곳을 보았으며, 이후 30분 동안 총성이 들렸고 그 후 장갑차가 홀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UN 통역가인 무하메드 두라코비치는 이날 길가에 나있는 하수구에 버려진 사체들을 보았으며, 그 중 몇몇은 살아있었다고 말하였다.

    항공 사진과 발굴을 통해 이 지역 근처에 집단 매장터가 발견되었다.
     
    현장에서는 탄약 카트리지도 발견되었으며, 사망자들이 도로 한쪽에 줄을 선 후, 총살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총 150구 정도 되는 시체들은 쓰러진 곳에서 흙이 덮어졌다. 

    모두 남성이었으며, 14~50세 정도였고,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간인 옷을 입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등 뒤로 손이 묶여 있었다.

    이 중 9명이 신원 확인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스레브레니차에서 실종된 사람들 명단에 속해있었다.



    7월 13일 늦은 오후 : 크라비차

    7월 13일 오후 늦은 시각, 크라비차 농업 협동조합의 창고에서 처형이 이루어졌다.
     
    산디치 근처 평야에서 잡힌 1000~1500명의 남자들이 끌려와 산디치 초원에 격리되었다. 

    이후 그들은 크라비차로 옮겨졌다. 

    한 증인은 200명 정도의 남자들이 허리까지 옷을 벗고 손을 공중으로 올린 채, 강제로 크라비차로 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오후 6시 쯤, 모든 남자들이 창고에 모이자, VRS 군인들은 수류탄을 던지고, 로켓 추진형 수류탄까지 동원하여 창고를 공격하였다. 

    소문에 따르면 크라비차에서의 처형은 비교적 우발적인 것으로, 한 창고의 문이 열리자 즉각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크라비차와 산디치 근처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창고 처형 전에도, 산디치 근처에서는 200~300명의 사람들이 집결된 후 기관총으로 총살당하였다.

    몇몇 사망자는 칼로 죽임을 당해 신체 일부가 절단되어 있기도 하였다. 

    시체들은 브라투나츠로 실려가거나 도로 근처에 흐르는 강에 던져졌다. 

    한 목격자는 이 모든 것이 7월 14일에 일어났다고 하였다. 

    크라비차 농장 헛간에서 벌어진 집단 살인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세 사람이었다.

    도망치려고 창문 밖으로 기어나가던 사람들 역시 무장 군인들에게 사살되었다. 

    사격이 다 멈추자, 창고 안은 시체로 가득 찼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다음 날 군인들이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들을 수색하는 작업을 펼쳤다고 한다. 

    이 작업에서 발견된 몇몇 생존자들은 강제로 세르비아 노래를 부른 후 총살당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은 이후엔, 불도저가 시체들을 헛간 밖으로 밀어냈다.

    바깥 아스팔트는 물호스로 청소되었으나, 96년 9월까지도 그 곳에는 증거물이 남아있었다.
     
     
     
    3.jpg

    ▲ 불도저에 밀려 훼손된 시신들
     


    크라비차 창고에서 수집된 머리카락, 피, 폭탄 잔해물 등은 처형이 이루어졌음을 강하게 뒷받침해 주었다. 

    ICTY 검사측의 법의학자들은, 당시 글로고바 2라고 이름 붙여져 있던 139명이 집단 매장된 무덤과 크라비차에서의 처형 사이의 관련점을 찾아냈다. 

    젤레니 야다르 5라고 불린 집단 매장터에는 145구의 시체가 있었으며, 대부분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후 공개된 매장터 글로고바 1에서는 벽돌 조각, 창문 틀 등이 발견되어 역시 크라비차와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매장터에는 191구의 시체가 들어있었다.



    7월 13(?) 14일 : 티스차

    포토차리에서 클라단즈로 향하던 버스는, 티스차에 멈춰 수색되었고, 보스니아인 남성들은 강제로 내리게 되었다.

    여기서 남성들은 군인들의 인도 하에 이미 많은 포로들이 갇혀있던 근처의 학교로 갔다. 

    여기서 몇 명이 손이 뒤로 묶인 채로 트럭에 실렸다. 

    트럭은 가다 멈추었고, 이 순간 군인들이 트럭 뒤로 다가와 총격을 가하였다. 

    생존자들은 트럭에서 도망친 후 숲에 숨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95년 7월 14일 : 오라호바크

    브라투나츠의 포로들 중 일부는 오라호바크의 그르바브치 학교로 1995년 7월 14일 아침 일찍 실려갔다. 학교 체육관은 포로들로 곧 가득 찼다.

    증언에 따르면 그곳엔 대략 2,000~2,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며, 어린이와 노인도 있었다고 하였으나, ICTY 측은 이것은 과장이고 실제로는 1000명 쯤이었을 거라고 추정하였다.

    몇몇 포로들은 바깥으로 끌려나가 살해당했다. 

    믈라디치 장군이 어느 시점에 등장하여 포로들에게,

    "너네 정부는 너희를 원하지 않으니, 내가 직접 처리를 맡게 되었다."

    라고 말하였다는 증언도 있었다.


    체육관 내의 포로들은 몇 시간 동안의 억류 후 작은 그룹으로 나누어져 그날 오후 처형장으로 끌려가 처형당했다

    첫 총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추가 사격으로 살해당했다. 

    한 생존자는, 믈라디치가 차를 타고 와서 처형 현장을 지켜보았다고 말하였다.

    감식반의 조사 결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지지하는 중요 증거가 발견되었다. 

    공중 및 위성 사진에서는 7월 5일에서 7월 27일 사이에 오라호바크의 공터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음을 보여준다. 

    두 개의 집단 매장터가 그 지역에서 발견되었으며, 조사관들은 이를 라제테 1, 라제테 2라고 이름 붙였다.



    10.jpg

     ▲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후 한곳에 수습된 시신들
     


    라제테 1 매장터는 138구의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이 중 130구는 남자로 확인되었다. (8구는 성별 확인 불가능)

    당시 스레브레니차의 실종 명단에 실려있던 23명은 신원 확인된 시체 중에 있었다. 

    라제테 2 매장터의 경우 2000년까지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발견된 243구의 시체는 전부 남자였고 대부분이 총상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147구는 안대가 씌워져 있었다.

    정밀 검사를 통해 일부 시체들은 호드지치 로드 3, 4, 5라고 명명된 두 번째 매장터에 옮겨져 묻힌 것으로 확인되었다. 

    공중 사진을 통해 이 무덤은 9월 7일에서 10월 2일 사이에 만들어졌음을 밝혀냈으며, 이들 모두 1998년에 발굴되었다.



    1995년 7월 14~15일 : 페트코비치

    1995년 7월 14일~15일, 1500~2000명 정도 되는 포로들이 브라투나츠에서 페트코비치에 있는 학교로 옮겨졌다. 

    페트코비치 학교에 억류된 포로들의 경우 환경이 그라바브치 학교보다 더욱 나빴다.

    날씨는 더웠고, 사람들은 빽빽이 들어찼을 뿐만 아니라 음식물도 제공되지 않았다. 

    어떤 포로들의 경우는 자신의 오줌을 마신 사람도 있다.

    때때로, 군인들이 들어와 포로들을 구타하거나, 밖으로 부르곤 하였다. 

    몇몇 포로들은 탈출을 시도할 생각을 하였으나, 
    다른 이들은 적십자가 이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며, 자신들을 다 죽일 수 있을리는 없으니 남아있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 말하였다.


    사람들은 작은 그룹으로 나누어졌으며 7월 14일 밤, 페트코비치의 댐으로 옮겨졌다. 

    처형장에 도착한 이들은 끌려나와 줄을 선 채로 총에 맞았다. 

    몇몇은 물을 달라고 부탁하였으나 무시당하였다.

    여기서는 두 명의 생존자가 있었으며, 이들은 불도저가 시체들을 치우는 것을 목격하였다. 

    어떤 생존자는 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안대 틈사이로 믈라디치가 현장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공중 촬영 감식 결과 페트코비치 댐 근처의 토양이 파헤쳐진 흔적이 있었으며, 1995년 9월 7일에서 27일 사이 한 번 더 파헤쳐진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있던 무덤은 1998년 4월 발굴되었는데, 시체가 43구 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시체는 리플리예 2로 1995년 10월 2일 전에 옮겨졌다. 

    여기서 적어도 191구의 나머지 시체들이 발견되었다.



    1995년 7월 14~16일 : 브란예보

    1995년 7월 14일, 브라투나츠의 포로들은 즈보르니크 북쪽에 있는 필리카 마을의 학교를 향해 버스로 수송되었다. 

    이곳 역시 환경이 열악해 열사병과 탈수로 사망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틀밤 동안 필리카 학교에 묶여있다가 브란예보 군수 농장으로 옮겨져 총살당했다.

    당시 VRS 제10 사보타주 파견대의 일원이었던 드라첸 에르데모비치는 집단 처형에 협조, 적어도 70명의 보스니아인을 죽였다고 시인했다.

    이에 대해, 생존자 중 한 명은 그 날을 이렇게 떠올린다 :


    사격이 시작되었을 때, 난 몸을 땅으로 던졌었다.... 
    한 사람은 내 머리 위로 쓰러졌다. 
    아마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던 것 같다. 
    뜨거운 피가 내 위로 쏟아져내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도움을 구걸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신을 어서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일단 고통스러워하게 놔둬. 나중에 죽이지 뭐.”

    증인 Q 의 증언 中...


    에르데모비치는 희생자 중 한 명만이 민간인 옷을 입고 있었으며, 탈출하려고 했던 한 사람을 제외하면 저항은 없었다고 하였다.

    가끔은 처형인들은 더욱 극악해져서, 스레브레니차에서 보았던 얼굴이 있으면, 죽이기 전에 두들겨 패고 모욕을 주곤 하였다.


    1000~1200명이 이 날 처형장에서 죽었다.

    1995년 7월 17일에 브란예보 군수 농장을 촬영한 공중 사진을 보면 농장 근처 평야에 널려있는 수많은 시체들이 보이며, 평야에서 시체들을 모으는 기계의 모습도 보인다.

    에르데모비치는 돔 쿨투라 클럽에서도 보스니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처형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증언을 한 바 있다.

    돔 쿨투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1년여가 흐른 후에도, 이곳에서 일어난 잔혹 행위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9.jpg

     ▲ 당시의 사건을 말해주는 한 남성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당시 증거 사진.
     

     
    혈흔, 머리카락과 신체 조직들이 빌딩 내에서 발견되었으며 탄피, 탄창 등도 두 층에 걸쳐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증거물로부터 폭탄과 기관총이 사용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무대 아래에서 시체와 개인 소유물들이 발견되었으며, 핏방울이 무대 위에서 떨어졌다.

    브란예보 군수 농장 처형에서 살아남은 세 명의 생존자 중 두 명은 지역 보스니아 세르비아 경찰에게 체포되어 바트코비치의 전쟁 포로 집합소로 보내졌다.
     
    이들은 그곳에서 이런저런 역경을 겪었으나 결국 살아남아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찬차리 12번 도로에는 브란예보 군수 농장의 집단 매장터에 묻혀있던 시체 중 적어도 174구가 다시 옮겨져 묻혔다.

    43구는 온전한 신체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며, 대부분 총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313개의 다양한 신체 부위가 발견되었는데, 이중 145개는 치명적인 총상을 포함하고 있었다.



    1995년 7월 14~17일 : 코즐룩

    코즐룩에서 처형이 일어난 정확한 날짜는 알려져있지 않으나, 14일~17일 사이로 추정된다. 

    이중 코즐룩의 위치 등을 고려했을 때 15일, 16일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즉, 오라호바크, 페트코비치 댐, 브란예보 등에서 일어난 처형과 비슷한 패턴으로 일어난 것이다.

    또다른 증거는 즈보르니크 여단의 포크레인이 7월 16일 코즐룩에서 8시간 있었으며, 그 여단의 트럭이 그 날 오라호바크와 코즐룩 사이를 두 번 오간 일이다.


    불도저가 코즐룩에서 7월 18일~19일에 있었던 것도 알려져 있다.

    항간에는 코즐룩 처형장으로 옮겨진 500여명의 죄수에게 강제로 세르비아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직 아무 생존자도 등장하지 않았으나, 1999년 조사를 통해 집단 매장터가 코즐룩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은 처형장이면서, 드리나 근처의 장소로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경찰팀들이나 울브즈의 막사를 통과해야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매장터는 채석장 및 쓰레기 매장터에 만들어져 있었다. 

    조사관들은 실제로 근처 비팅카 병 공장에서 버린 초록색 유리조각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이는 조사관들이 찬차리 길을 따라 있는 두 번째 매장터와의 연관 관계를 확립할 수 있게 하였다.

    코즐룩의 매장터는 1995년 9월 27일 전 어느 시점에 재발굴된 듯 하나, 그래도 이후 최소 340구 이상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237구는 총상으로 죽은 것이 확연되었다.

    83구는 머리에 한 발, 76구는 흉부에 한 발, 72구는 여러 군데의 총상, 5구는 다리에, 1구는 팔에 총상이 있었다. 

    희생자들의 나이는 8세에서 85세까지였다.

    몇몇은 불구 상태였으며, 신체 절단으로 인한 경우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천이나 나일론 끈 같은 것으로 묶여 있었다.


    찬차리 길을 따라서는 12개의 집단 매장터가 나왔으며, 찬차리 3번과 12번 도로 옆에 있는 것이 2001년에 자세히 조사되었다. 

    찬차리 3번 도로는 코즐룩의 매장터와 연관 관계가 있으며, 비팅카 공장 라벨이 붙여진 유리 조각들이 이를 말해준다.

    158구의 유해가 발견되었으며, 이중 35구는 형태를 온전히 갖추고 있어 대부분이 총상으로 죽었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1995년 7월 13~18일 : 브라투나츠-콘예비치 폴예 도로

    1995년 7월 13일, 콘예비치 폴예의 근처에서, 세르비아 군은 수백명의 보스니아인을 처형하였다.

    브라투나츠-콘예비치 폴예 도로를 탈출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항복할 경우 제네바 협회가 개입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브라투나츠에서, 그들은 세르비아 군이 그들을 자그렙으로 호위해 간 후 죄수들과 교환할 것이라고 전달받았다. 

    세르비아 군은 네덜란드 대대로부터 훔친 UN 군복과 UN 차량으로 이들을 안심시키도 하였다.

    1995년 7월 17일과 18일, 세르비아 군은 보스니아인 150~200명을 포획하여 대략 절반을 처형하였다.



    1995년 7월 18~19일 : 네주크-발코비차 최전선

    발코비차의 통로가 닫힌 후에도, 수많은 이들이 보스니아 영역으로 탈출을 시도하였다. 

    대부분은 VRS 군에게 네주크-발코비차 영역에서 잡혀 즉시 처형되었다. 

    네주크 근처에서는, 대략 20개의 소그룹이 보스니아 세르비아 군에게 항복하였다. 

    항복 후, 보스니아 세르비아 군들은 이들을 줄을 세운 후 간결 처형하였다.

    예를 들어 7월 19일, 대략 11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 네주크에서 세르비아의 크라지나 제16 여단 (당시 즈보르니크 여단)에 의해 처형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후 ARBiH 군으로 이뤄진 13명이 7월 19일 네주크에서 죽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동시에, 대략 200명의 ARBiH 군이 자동 소총 및 사냥용 라이플로 무장한 채 스나고보 근처의 낡은 도로 가까이에 숨어 있었다. 

    아침이 되자 50명 가량의 보스니아인이 판두리카 지역에서 즈보르니크 여단의 전선을 공격, 보스니아 영토에 닿으려 하였다. 

    즈보르니크 공중 보안 센터는 다음 날 두 그룹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 제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1995년 7월 20~22일 : 메세스 지역

    라도반 카라디치와 라트코 믈라디치에 대한 ICTY 기소장에 따르면, 7월 20일에서 21일 사이 메세스 근처의 다리에서, 보스니아 세르비아 군은 메가폰을 사용해 보스니아인들에게 항복하면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선전하였다.

    대략 350명이 이를 듣고 항복하였으며, 이중 약 150명은 세르비아 군에 의해 처형되었다.

    1995년 라도반 카라지치와 라트코 믈라디치 기소.
     
    1995년 11월 16일 "스르프스카 공화국 대통령" 라도반 카라지치와 보스니아 세르비아군의 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는 1995년 7월 보스니아 무슬림 학살을 자행한 죄로 전 유고슬라비아 국제형법재판소에 의해 기소되었다.
     


    기념비.jpg

    ▲ 2003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기념비 설립



    2003년 9월 30일,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학살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하여 스레브레니차 학살 추모비를 세웠다. 

    추모비 건립에 쓰인 돈은 600만 달러로, 이 중 100만 달러는 미국 정부가 지원하였다.


    그리고 희생자의 수를 가늠하기도 힘든 유해 수습당시의 현장 사진들.



    수습1.jpg

    ▲ 계속해서 유골들이 발굴된다.
    이런 식으로 매장된 시체의 수가 한 구역 안에 수백구였다.


     
    11.jpg

    수습2.jpg

    묘.jpg

    ▲ 수습된 유해들과 희생자들을 기리는 묘지

    ..
    ..
     
    보스니아 내전 중에 일어난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사건.

    조금은 생소하지만 2차대전 이후 최악의 범죄라고도 불리며, 
    보스니아 내전 중에 일어난 이 대규모 학살에 대해서 관심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출처 루리웹 R 님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327/read?articleId=18380465&bbsId=G005&searchKey=subjectNcontent&itemId=145&sortKey=depth&searchValue=%25EC%258B%25A4%25EC%25A2%2585
    헨리죠지의 꼬릿말입니다
    추적당하고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다고 해서 희생자는 아니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사건에 놓였을 때, 현실이 덫이 되었을 때, 일상생활이 뒤집혀질 때에야 비로소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진실을 찾아 나서지만 실패하기 때문에, 자신이 찾은 진실이 진정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 밖의 여러 이유 때문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더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그는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스릴러가 슬퍼지면 독자들은 빠져 나오기 어렵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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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02 23:44:36  112.170.***.191  아이참~  341431
    [2] 2015/11/07 02:37:17  182.218.***.93  냥2님  140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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