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옵션 |
|
그는 남편의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사이라고 했다. 남편의 가족들과도 고루 안면을 트고 있는, 붙임성 좋은 남자였다.
“아…… 이제 가려고?”
그가 묻는다.
체액으로 젖어 불쾌해진 시트가 에어컨 바람에 다시 바삭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아니, 아직.”
호텔 벽 한쪽에 걸린 소리 없는 벽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은 일렀다.
“그럼 이리 와. 한 번 더 가자.”
그는 매끄럽게 웃으며 팔을 벌렸다.
남편과 비슷한 체형의 그는 함께 지낸 세월의 힘인지 남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를 누르는 무게감이나 가슴을 쥐는 악력이나. 끝내는 방식까지 비슷했다.
원하는 게 있을 때만 억지로 만들어내는 사람 좋은 미소도.
나는 그들의 미소를 흉내냈다.
“내가 좋아?”
“글쎄.”
애매하게 답을 피한다. 그것도 남편이 자주 쓰는 대화법이었다.
“너무해. 친구 아내를 유혹해 놓고서.”
그는 의외로 정색을 했다.
“그 얘긴 안하기로 했잖아.”
그랬다. 함께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남편을 잠깐 잊어두기로 했다. 그는 남편의 친구가 아니며 나 역시 기혼자가 아닌 것으로.
나는 궁금해졌다.
그에게 지금 이 순간 더 무거운 것은 어느 쪽일지.
알량한 우정일까, 껍질 같은 죄책감일까.
혹은 둘 다 상관없이 아직 젊고 쓸 만한 친구의 아내에 대한 욕정만이 실재하는 걸까.
“그래,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난 거였지.”
타액이 묻은 입술은 한결 부드러웠다. 덩달아 미소도 미끄러웠다.
“처음 만난 사이라도 연인 같은 거 할 수 있을까?”
기혼자가 하는 연인이라는 말에 숨은 뜻은 암시라고 할 것도 없이 명확했다.
돌아가야 하는 곳이 있는, 순간의 유희와 닮은 연애.
그는 눈치 빠르게 내 말을 알아들었다.
“안 될 게 뭐 있어?”
나는 그들처럼 웃으며 벗은 몸을 기댔다.
“사진 한 장 남기자. 첫날 기념.”
“음?”
“괜찮아. 알아서 잘 숨길 거니까. 자기보다 내가 더 곤란한 사람은 나야. 진짜 연인처럼 굴고 싶어서 그래.”
나는 그의 경직되어 가는 표정을 내 미소와 함께 전화기에 담았다.
호텔 조명치고 사진은 나쁘지 않았다. 떨떠름해 하는 그의 손을 들어 가슴 위에 얹었다. 삼십대 중반치고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가슴은 사실적이었다.
불륜의 현장을 대변하듯 싸구려 티가 났고, 둘 다 추해 보였다.
“사진 잘 나왔다.”
나는 방긋 웃으며 그에게 매달렸고, 한 번의 정사를 더 치르며 좀 더 노골적인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처음에는 내켜하지 않던 그도 나중에는 흥이 동했는지 자세와 각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뒤, 나는 호텔을 나서며 남편에게 사진 몇 장을 추려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직은 집에 들어갈 시간이 아닌 듯했다.
* * *
두 번째 상대는 남편이 간혹 욕을 하던 직장 후배였다.
삼십대 초반인 그는 아직 젊은 만큼 더 적극적이고 노골적이었다.
남편이 그의 욕을 하듯, 그 역시 남편의 욕을 했으리라.
그는 내가 “당신하고 남편은 비교가 안 돼.” 라고 앓는 소리를 낼 때마다 정열적이 되어갔다.
나는 더 외설적이고 추잡한 사진들을 얻어냈으며 만족했다.
후배의 자취방을 나서면서 남편에게 사진을 보냈다.
여전히 답장은 없었다.
나는 슬슬 쌉쌀한 새벽 공기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노출된 살들이 새벽처럼 차가웠다.
* * *
세 번째 상대는 남편의 사촌 형이었다.
남편이 그에게 약간의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을 나는 알았다.
사춘기 시절, 남편의 마음 밑바닥에서 자생하기 시작한 열등감은 끝내 뿌리를 내려 그를 머저리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올해 마흔 하나라던 사촌 형은 남편보다 체지방이 적었고, 외모도 한결 나았으며 수입은 남편의 세 배가 넘었다.
부드럽게 젖혀지는 가죽 시트의 탄성 또한 남편의 국산차보다 훌륭했다.
그는 내가 난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정에는 아무런 제재가 없었고 속옷은 한층 더 불결해졌다.
“이건 내가 가져가서 삭제할게요.”
나는 사진을 찍는 대신 블랙박스의 메모리를 챙겼다.
자그마한 미니SD 카드는 스마트폰의 슬롯에도 삽입이 가능했다.
나는 동영상을 통째로 남편에게 보냈다.
새벽 세시 반에서 네 시 사이. 까맣던 하늘이 곧 파란색으로 바뀔 시점이었다.
드디어 답장이 왔다.
[너 미쳤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거야.]
안도가 스며들었다.
전화기를 꾹꾹 눌러 성실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미아 네. 내가 잠ㄲㅏㄴ 미처ㅅ어나 봐 제바ㄹ 용서해 주ㅓ.]
[지금 어디야.]
[지금 지브로 갈ㄱㅔ. 가서 비ㄹㄱㅔ 잽ㅏㄹ요 서해 주 ㅓ]
[당장 와.]
* * *
지하 주차장으로 남편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남편은 차문을 쾅 닫고 정신없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남편의 등을 삼키고 나서 나는 전화를 걸어 흐느꼈다.
“살려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수화기 너머의 음성은 당황한 듯 했지만 상냥했다. 나에게 떨지 말고 제대로 말을 해보라 몇 번이고 다독였다.
집으로 출발하기 전 급하게 삼켰던 알콜 기운이 막 돌기 시작한 터라 발음이 어눌했다.
취한 목소리와 울 때 내는 목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남편이 저를 죽이려고 해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그는 곧 오겠다고 했다.
대답을 듣고 나서 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1,2,3…… 그리고 11.
1에서 11까지 숫자가 바뀌는 동안 심장 박동은 꼭 그만큼씩 빨라졌다.
마침내 11층이 표시됐을 때는 두 다리로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문이 열렸다.
나는 거의 기듯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이 환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신발을 벗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거실 등을 켜는 것이었을 테니.
에어컨을 켜두고 나간 집 안은 냉장고 속처럼 추웠다.
남편이 거실 한쪽에 서 있었다.
양말이 더러웠다.
남편은 내가 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남편은 항상 차갑고 냉철한 편이었다.
내가 드러내는 감정의 잔해들을 “귀찮다.” 거나 혹은 “여자들은 왜 그딴 식이야.” 라는 말로 청소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잔정이 없고 배려를 몰랐다. 남편은 뉴스와 상식을 무기 삼아 나의 무지를 할퀴는 것을 즐겼다.
그런 남편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고 싶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확실히 남편은 나보다 이성적인 면이 강한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거실 한 복판에, 등에 칼이 찔린 시체를 놓아두고서.
“움직였어!”
내가 말했다.
“뭐?”
“방금, 움찔했다고. 움직였어! 살아 있는 것 같아!”
남편은 흘러내린 피로 흠뻑 젖은 바닥을 밟고 시체에게 다가가 칼을 뽑았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아 잠깐 웃음이 나왔다.
“……웃어?”
칼을 쥔 손이 피에 젖은 채 부르르 떨렸다.
“응.”
“웃어? 웃어? 제 정신이야? 자기 언니를 두고…… 이 미친 여자가……!”
시체는 언니였다.
늘 나보다 조금 더 예쁘고 조금 더 똑똑하고 조금 더 고상한 척 굴던 언니.
언니를 시체로 만든 사람은 나였다.
언니는 나와 체형이 비슷했으며, 최근 내가 머리를 만진 뒤로는 뒷모습만으로 얼핏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남편이 언니와 일 년이 넘게 나 모르는 관계를 지속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편과 언니가 몰랐던 것뿐이다.
내가 언니와 비슷한 머리 모양을 하고, 언니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이유를.
내가 꽤나 오랫동안 오늘을 계획했다는 것을.
오늘은 남편이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철야 근무를 하는 날이었고, 나는 우연을 가장해 만난 언니를 집으로 데려왔다.
평소에도 곧잘 집으로 찾아오던 언니에게는 오늘이 평소와 같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언니의 등을 찔렀다.
언니와 비슷한 옷으로 갈아입고 남편의 친구를 만났다.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남편은 내가 보내는 전화상의 메시지를 거의 보지 않았다. 급한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하라는 사람이었고, 애도 없이 매일 집에만 있는 나에게 급한 일은 결코 없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답장이 없자 후배를 만났고, 사촌형을 만났다. 동영상 파일을 보내자 평소와는 다른 일이라 생각해서인지 메시지를 확인한 듯했다.
불륜 증거에 충격을 받은 남편은 내게 당장 집으로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시간을 맞춰 경찰에 신고했다.
곧 경찰이 들이닥칠 것이다. 신고를 받은 뒤 경찰이 출동하는 시간은 삼 분이라 했고, 때마침 지구대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멀지 않았다.
남편은 흉기를 쥐고 있었다.
나는 경찰에게 불륜 사실을 알고 화가 난 남편이 나를 죽이려다 머리 모양과 옷차림이 비슷한 언니를 나로 착각해 죽인 것 같다고 진술할 참이었다.
나는 지금 술에 취해 엘리베이터에서도 겨우 내린 상태이므로 사람을 죽일 만한 힘은 없었다.
물론 내 계획이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을 안다.
일단 내 전화기에서 전송된 게 분명한 사진과 동영상이 문제였다. 이건 상대들에게도 전송해 두었기에 실수로 익숙한 남편의 번호를 누른 것 같다 둘러대면 어떨까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
살인이 발생한 정확한 시간이었다. 어디선가 에어컨을 켜두면 시신의 온도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에 흉내를 냈다.
부디 잘 통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늘 나를 없는 존재로 취급하던 남편이 작으나마 교훈을 얻기를.
결국 감옥에 가는 게 둘 중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출처 | 내 하드 |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