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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1497197
    작성자 : 익명Y2FiZ
    추천 : 10
    조회수 : 1503
    IP : Y2FiZ (변조아이피)
    댓글 : 178개
    등록시간 : 2015/08/09 22:16:10
    http://todayhumor.com/?gomin_1497197 모바일
    키큰 여자도 사람이다
    우리 가족은 네 식구다. 엄마 아빠 오빠 그리고 나. 엄마는 165, 아빠는 175, 오빠는 186 그리고 나는 180이다. 네 식구 중에 나는 두번째로 키가 크다. 

    부모님은 지극히 평범한 키. 그런데 오빠와 나만 크다. 아빠는 증조부대까지 몹시 큰 분들이 여럿 계셨다 했다. 뵌 적도 없는 고모 할머니도 키가 180은 족히 되셨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도 생전 키가 거진 180은 되셨다. 외할아버지의 아버지도 키가 크셨다고 했다. 그런데 이놈의 키큰 유전자는 열성인지 나와 오빠만 물려받았다. 외가에도 친가에도 우리 둘만 크다. 명절엔 늘 우리 둘이 기둥처럼 우뚝 솟아있다. 

    언제부턴가 키가 크다는 것은 내 특징이 됐다. 누구나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이렇게 부른다. "왜 그 키 존나 큰 여자애 있잖아" 그럼 모두 알아듣는다. "아 걔?" 나에겐 어릴때부터 이름이 없었다. 나를 부르는 명칭은 '키큰애'로 족했다. 그래도 다 알아 들었으니까. 

    중고등학교 시절, 키가 크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길거리에서 욕을 얻어먹었다. 혼자 집에가던 길, 지나가는 나에게 왠 중고딩 남자 무리는 "와 키 존나 크네 거인인가?ㅋㅋㅋ"하는 말을 면전에 뱉으며 지나갔다. "병 아니야? 시발?ㅋㅋㅋ"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죄진 사람처럼 눈물을 훔쳤다. '나는 그저 우연히 키가 큰 것 뿐인데 왜 저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야 하지?' 나 자신조차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날 이후에도 비슷한 경우가 정말 많았다. 살이 찐 사람에게 악담을 던지는 것과 비슷했다. 그냥 그렇게 생겼을 뿐인데 욕을 먹었다. 이유는 없었다. 내가 뚱뚱했다면 살을 빼서라도 모욕적인 상황을 피할 수 있었겠지만 키는 어쩔수 없었다. 나는 점점 의기소침해졌고 노인처럼 등을 잔뜩 굽히고 다녔다. 

    지금 나는 어느덧 20대 후반이 됐다. 당당하게 살겠다고 나 자신과 다짐했다. 곱추같던 자세도 제법 교정했고 가끔은 10센치는 족히 되는 구두도 신고 다닌다. 그런데 아직도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괴물을 쳐다보듯 이상한 표정으로 날 구경하는 사람들, 날 보며 쑥덕거리는 사람들, 심지어 나에게 직접 욕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와~~ 존나 크네ㅋㅋㅋㅋ" 하면서. 아직도 나는 가끔 홍대, 강남, 명동 같은 번화가에 가면 사람들이 무섭고 멀미하듯 속이 안 좋을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곳에 갈때면 누구도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센 여자로 변신한다. 함부로 말조차 못 걸 만큼 세게 하고 나서면 그나마 면전에 욕하는 사람이 좀 줄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남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남보다 더 키가 커진 여자고 당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의 놀림거리도, 욕을 먹어야 할 존재도 아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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