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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ŜatasVin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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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ŜatasVin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431 데이비드 베너나 인터뷰 일부 번역 [새창] 2020-02-25 19:49:41 0 삭제
    저는 삶을 계속하는 이익관심을 기준으로 볼때는 어느정도의 불펴부당과 조금의 손해가 전망적 이득에서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그것은 조건부적 선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언급했었죠. 즉 불가피한 필요악을 일부분 받아들이는게 선의 총량을 늘리는 방법이라면 우린 기본적 동의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편이라고요. 하지만 출산의 문제는 이러한 작은 해악의 논리가 적용되질 않는다고 이미 언급했어요. 기본적 동의를 구할 수조차 없는 대상에게 일방적 행위를 하는 거고, 그 개인의 전망적 이득을 비교해본다고 해도, 쾌락과 고통의 도덕적 비대칭성에 관한 기준을 적용해본다면, 그 사람의 존재함으로써 얻게되는 전망적 이득은 존재하지 않음의 전망적 이득에 비하면 무익하니까요.

    물론 개별자들마다 해악의 규모는 달라질 수는 있죠. 출산이란 행위가 그 개인에겐 작은 고통이 된다 하더라도 주변인들의 행복이 늘어난다면 공리주의적으로는 수용이 가능하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적용한다 해도, 그 조건은 쾌락과 고통의 부재에 해당하는 비대칭성을 어느정도 극복 가능한 사람에게만 유효한 조건입니다. 기초적인 동의도 못구하는 대상에게 평생의 전망적 이득을 보장해주지 못하면서, 새로운 존재를 던지는 행위가 어떻게 정당화 된단 말입니까?

    팔다리를 부러뜨려도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그런 작은 해악은 우리는 보통은 용납합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팔다리를 못쓰는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을 우리는 애석하게 생각하지, 그 사람이 존재하게 됐다는 것 자체를 기쁘게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대칭적 상황속에서 대부분은 불가피하게 놓여있습니다. 이런 부조리에 대해서도 아무런 책임도 못느껴야 한다는 겁니까? 부조리한 세계에 일방적으로 태어나게 했는데도, 태어남 그 자체를 항상 감사해야 하나요?

    저는 한번도 당신과 토론을 하면서 먼저 인신공격을 해본적이 없고, 당신이란 사람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서, 당신 자체에 대한 가치평가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타인의 의견을 검토를 해볼 생각을 전혀 하질 않고 자기 주장과 인신공격만 늘어놓는거 보면, 저는 참 당신이란 사람이 좀 애석하게 느껴집니다. 제발 부모는 아니길 바랍니다.
    430 쾌고의 불균형성 [새창] 2020-02-25 18:35:36 0 삭제
    저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고 개소리는 당신이 하고 계시잖아요. 파시스트와 대화해서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429 쾌고의 불균형성 [새창] 2020-02-25 18:08:30 0 삭제
    이미 여러번 지적한 것이지만 삶을 계속하는 이익관심과, 삶을 시작하는 이익관심은 다른 가치 기준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감정이 다른 타동의 동물을 재생산 하는 것도 아니고, 로봇을 생산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만의 이익관심과 자의식을 가진 새로운 인간을 생산하는 겁니다. 시작할 가치가 있는 삶에 대한 평가와 계속할 가치가 있는 삶에 대한 평가는 달라야 합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이해관심과 가치 평가에만 의존한다는 것을 일방적인 폭거에 불과한 겁니다.

    리스크와 보상에 대한 평가는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이익관심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만 유효할 뿐입니다. 작은 해악과 불편부당을 수용하는 것은 더 나은 쾌의 총량 혹은 더 심한 해악의 예방을 막는 차원에서는 유효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창조하는 윤리적 정당화에 대한 옹호로는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잠재적 이익관심을 근거로 햇을때, 그는 존재를 전제로 하는 고통을 태어나지 않음 자체로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좋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존재로 전제로 근거짓는 쾌락의 보상은 결국 언젠가는 박탈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개인을 위해 충분한 이점이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미래 후손들의 잠재적 이해 관심을 고려한다면, 그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태어나는 것에 비해서 훨씬 더 낫습니다. 그런 고려를 선택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고 도덕적으로 탁월한 선택을 하는 거고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을 위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점진적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어차피 필멸자로 태어난 존재일 뿐이며, 자기 자신의 죽음만을 경험하면 될 뿐이니까요.

    이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불확정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른 희생자를 세상에 내몰아야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내면의 악마적 심성에 굴복하고, 현실에 타협해버린 위선적이고 이기주의자이자, 희생을 미화하하는 전체주의자들과 다름없습니다.
    428 쾌고의 불균형성 [새창] 2020-02-25 17:58:27 0 삭제
    우리가 타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종이라는 잠재적인 미래 개인의 이해관심사에 대한 고려를 요청하는데, 이미 태어난 사람은 거기에 관심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밖에 안하시는 군요. 님은 윤리적 이기주의자일 뿐이신데, 님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끼친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보면 정말로 반출생주의는 인도주의의 극치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님같은 사람이 부모가 된다는 것을 상상만 하면 너무나 소름이 끼치고 구역질이 나요
    427 쾌고의 불균형성 [새창] 2020-02-25 17:56:39 0 삭제
    당신은 쌍병신주의자라고 대답을 돌려 드리죠
    426 지구라는 별은 저에겐 너무나 불행한 행성이군요 [새창] 2020-02-25 02:34:01 0 삭제
    제가 어떤 글을 올린다고 해서 특정인들에게 이 사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자기 철학이 확고하다면 제가 무슨 발언을 한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생각이 바뀔 이유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뭐하러 제 생각을 일일이 다 바꾸려고 하고 그것을 저한테 강요하고 그러십니까? 제가 특정인을 지목했나요/ 이 사상을 받아들이라고 했나요? 철학 게시판이란 목적에 맞게 저는 특정 사상을 소개할 뿐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사상이라고 생각되면 받아들이면 그만이고 아님 거부하면 그만이죠. 하지만 당신이 하는 말은 검토될 만큼의 가치가 있는 논증도 아니고, 일방적인 인신 공격일 뿐이군요. 솔직히 말같잖은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님이야 말로 쓰레기 같은 인격에 빠져 상호존중의 감정이라곤 일말도 가지고 잇지 않은데, 스스로가 인간답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엔 님은 쓰레기 그 자체군요
    425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20-02-24 21:48:26 0 삭제
    결론은 이해가 안됩니다. 어떤 세계의 질서를 전제짓는 조건들 중에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당위 같은 필연적인 이유 같은건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질서 같은건 어쩌다 보니 그런 식으로 존재한 것이며, 나름 그 중에서 생존에 유리한 방향을 찾도록 우리 스스로 적응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르는 거구요.

    비유적으로 성경에 대입한다면, 우리를 만든 신조차 최초의 인류가 선악과를 따먹어 버리는 사건 같은 것조차 그 존재의 계획에는 처음부터 없었으며, 그런 사건이 터져난 후에 피조물들을 추방해 버리고 최초로 만든 세계(에덴 동산) 같은 곳을 파괴시켜 버렸다고 보는 것이 이치적으로 더 합당합니다. 계시록적인 결론도 소설적인 시나리오에 불과할 뿐이죠. 이 모든 세계가 파멸해 버린다 해도 우리 같은 존재가 다시 생겨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생겨날 수가 있다고 해도, 생겨나야 할 필연성 같은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계에 계속 존재하는 것이 정당화 되어야 할 근거는 이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겁니다.
    424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20-02-24 19:46:43 0 삭제
    저는 단지 어처구니 없으며 아무런 합당한 근거도 없는 기만을 중지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우는게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감당하기 위해, 우는 것이 심리의 본질이고, 태어난 사람을 위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있는 사람들의 쓸모없는 애착을 위해 우리는 기뻐하고 있는 겁니다. 정작 사건이 지향하는 목적의 대상은 그 사람이면, 우린 그 사람을 지워버린채, 단지 그 주변의 사람들의 감정만을 중요시하면서 이 관습이 그 대상을 위한다는 어마어마한 기만의 연극을 그칠 생각을 하질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죽은 사람을 위해 웃어주며 기뻐하며 춤추고 노래해야 하며, 태어난 사람을 위해서는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에 머리를 찍으며 그 사람을 위해 슬퍼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행동하겠습니다.
    423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24 18:45:47 0 삭제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명백한 악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리에 합치되는 논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저는 보여줬습니다. 저는 충분히 입증을 했는데 입증책임을 지지 않는 논리를 제가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이유를 님의 텍스트를 아무리 검토해봐도 찾을 수가 없군요.
    422 지구라는 별은 저에겐 너무나 불행한 행성이군요 [새창] 2020-02-24 18:43:10 0 삭제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느끼지도 않았을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그것은 제 책임은 아니죠.
    421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23 21:05:32 0 삭제
    저 개인적으론 비난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평범한 관계에서 일방적인 사랑과 헌신이라도 상대의 허락을 구하지 않는 전제에서 행해지는 거라면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존재를 자의적으로 만들어내서 선택권이 없는 대상에게 그런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는 것에 책임을 묻지 않는 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겁니까? 설령 그 선의가 순수한 것이더라도 그것은 미화되거나 아름답게 포장할 근거가 전혀 없는 행위일 뿐입니다. 거대한 위선일 뿐이죠.
    420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23 16:05:13 0 삭제
    충분히 반출생주의가 논리적으로 옳다는건 저는 증명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저는 납득가능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그거 갖곤 안된다. 그것만 말하지 말라는 주장을 하시는 거까지 제가 일일이 다 대답합니까?

    반출생주의를 도덕적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건 당신의 선호입니다. 하지만 저에겐 도덕적 진리입니다. 여기에 논리적 타당성이 충분하다면 저는 이것이 확고한 객관적 도덕적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건 개인의 아집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군요.
    419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23 15:50:22 0 삭제
    그렇게 주장하고 계신데요
    418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23 15:46:40 0 삭제
    저는 논리적 개념만으로도 비존재와 존재는 비교 가능하며 실존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충분한 근거로도 그것이 비교가능한 개념이며 잠재적인 이해관심이 가치 근거가 된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논리만 갖고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을 바꾸시는데 제가 뭐를 더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통 감각만 없다면 내일 닥쳐올 죽음이라도 기꺼이 선택할 거라 생각합니다. 삶을 계속 선호하겠다면 그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란 겁니다. 그렇담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의 권리도 인도적으로 국가가 허용해줘야죠. 조력자살,안락사의 폭넓은 권리가 허용된다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그 방법을 선택할 거란 겁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사람들은 계속 살면 되는거죠. 그 사람들의 이해관심이니까요.
    417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23 13:17:59 0 삭제
    이전에는 비존재의 개념이 논리적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하셨다가 이번에는 논리적 정합성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하시는데 제가 이런 논리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사회 체계에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최악의 해악을 피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일종의 사회계약을 맺고 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불편부당이 더 큰 해악보다는 차선적으로 낫다라는 암묵적 가정을 기본적인 동의의 전제로 기초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재적 미래 개인은 이런 종류의 기본적 동의의 대상도 되지 못합니다.

    극심한 사고를 경험한 어떤 개인에게 팔다리를 잘라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 개인의 반대가 없다는 전제가 세워진다면 팔다리를 자르는 작은 해악은 일반적으로 용납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죠. 하지만 이 세상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런 작은 해악에 대한 의사결정조차 물을 수가 없습니다.

    윤리적 판단에 동의여부를 물을 수 없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는, 그 특정사람에게 임의적으로 주어지는 이익과 해악중에서 이익의 범위가 훨씬 더 커야 그나마 사람들에게 용납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유전자 편집으로 어떤 사람이 탄생했다고 했을때, 그 아이가 의료윤리를 위반했다고 해도, 그 사람을 탄생시킨 방법이 유도한 결과가 그 사람의 평생이 배 이상의 이익을 줬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경우에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 해악을 용인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전망도 매우 불투명합니다. 이런 예외적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불투명한 거고요.

    사회 활동의 대부분은 잠재적인 위험 가능성을 고려하더라도, 암묵적으로는 전체적인 쾌의 총량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한다는 호혜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조건부적인 동의의 대상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 동의없이 태어나는 미래 개인은 그러한 조건부적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그 개인이 삶의 총량에서 쾌가 클지 고가 클지는 아무도 전망하지 못합니다. 저는 일반적인 반출생주의 논지보다는 조금 타협적인 입장이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존재의 해악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저도 공리주의를 지지하는 편입니다. 여타의 철학 사상이 갖고 있는 딜레마에 비해선 공리주의는 사소한 편이라 보니까요. 하지만 공리주의자들이 복지의 총량을 늘리는 방법을 사람의 숫자를 늘리는 방법과 비례해서 계산하진 않죠. 우리의 부정성을 감소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불확실한 행복의 전망보다 훨신 더 우선적으로 고려가 되야 합니다. 각자에겐 저마다 이해관심이 있을 겁니다. 물론 동 의없이 삶의 부담을 졌다고 해도, 각자의 이해관심이나 선호는 아주 다를 수가 있죠.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의 산출능력이 충분한 사람은 계속 삶을 선호할 자격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계속 존재하는 것보다 비존재(저는 존재 이전의 비존재를 더 선호한다는 점을 명백하게 다시 언급합니다)를 선호하겠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선호를 획득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 결론은 공리주의자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린 존엄사의 권리를 낯설어 하죠.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지많요.

    만약 웰다잉 복지의 권리가 사회 보편적으로 확산된다면, 저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신 많은 사람들이 그 권리를 선택할 거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중추신경의 고통 감각 외에도 삶을 더 선호할 이유가 있다는 주장에 대한 명백한 반증이 되겠죠. 적어도 저는 기꺼이 그런 복지를 선호하겠습다. 공리주의자라면 이것에 반대할 이유를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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